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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뺑덕어멈, 심청 말렸다?… ‘심청이 무슨 효녀야?’

입력 | 2008-04-12 02:50:00


◇ 심청이 무슨 효녀야?/이경혜 지음·양경희 그림/176쪽·7800원·바람의아이들(초등 2∼4년용)

나무꾼 남편을 지상에 놓아두고는, 두 아이만 품에 안고 훌훌 날아가 버린 선녀. 하늘로 간 아이들은 졸지에 편모슬하가 돼버린 건데, 아빠가 보고 싶지도 않았을까? 홀로 남겨진 나무꾼 아빠는 또 얼마나 쓸쓸했을까? ‘콩쥐 팥쥐’의 그 못생긴 팥쥐, 어떻게 그렇게 양심 없이 못된 짓만 골라 할 수 있는지, ‘효녀 심청’의 그 뺑덕어멈, 얼마 등장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나올 때마다 고약하게만 구는지, 가만 읽다 보면 의아해진다.

“심술부리는 팥쥐가 어쩐지 아이답게 보이고, 혼자 남은 나무꾼이 걱정되어 밤잠도 설쳤다”는 동화작가 이경혜 씨가 궁금증을 확 풀어준다. ‘심청이 무슨 효녀야?’는 너무나 잘 알려진 구전들을 살짝 비튼 이야기 모음이다. 옛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면서 살을 불렸듯, 살짝 딴죽을 거는 방식으로 살을 더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고.

아빠가 보고 싶다고 애들이 하도 울어대자 옥황상제는 나무꾼에게 하늘나라 사람이 될 기회를 주기로 한다. ‘돌밭에서 진짜 콩 찾기’ ‘맛있는 복숭아 따 먹지 않고 1000그루 복숭아나무 지나가기’ ‘화살 맞은 새 데리고 오기’라는 까다로운 테스트를 통과한 나무꾼이 아이들과 선녀 아내와 함께 살게 됐다는 해피 엔딩. 선녀가 남편을 버리고 매정하게 떠나야 했던 이유(땅에 살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고)도 밝혀지니, 아이들의 걱정이며 궁금증이 웬만큼 풀렸을 듯.

‘콩쥐팥쥐’는 또 어떤가. 드세고 사나운 엄마 밑에서 자라려니 얌전한 성품을 가질 수밖에 없던 콩쥐. 반대로 순한 엄마가 기른 팥쥐는 제멋대로다. 콩쥐 엄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팥쥐 엄마가 콩쥐까지 맡아 기르게 됐는데, 동네 사람들이 “콩쥐는 흠 잡을 데 없는데 팥쥐는…”이라며 수군댄다. 콩쥐 때문에 욕을 먹으니 팥쥐 속이 안 뒤집어질까. 팥쥐가 못되게 구는 건 다 이런 까닭이 있었다는 것. 밋밋한 캐릭터에 제 나름의 사연을 불어넣으니 아이들 눈높이엔 꽤 들어맞는다. 사실, 콩쥐같이 무작정 착하기만 한 어린이가 어디 있을까!

할 말 당차게 하느라 고약하다는 소리를 줄곧 듣게 된 뺑덕어멈,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가겠다는 심청에게 호통을 친다. “너 죽고 네 애비가 눈을 뜨면 그 눈에서 피눈물밖에 더 나겠냐?” 뺑덕어멈의 합리적인 한마디에, 엄마 아빠 마음을 다시 한 번 헤아려볼 수 있을 듯싶다.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안 됐다면? 우렁각시가 아니라 우렁엄마였다면? 재미난 설정으로 옛이야기가 새롭게 들린다. 신나게 웃으면서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날 좋은 계기다. “굳어진 옛이야기들이 집집마다 물렁물렁 새로이 반죽되어 집집마다 다른 아이들을, 집집마다 다르게 잘 키워낼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게 작가의 바람이다. 그러니 이 ‘버전’ 또한 읽는 아이들 누구나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일러줄 것.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