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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답답한 군상들… 어쩌랴, 그게 우리 모습인걸

입력 | 2008-04-12 02:50:00


◇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이지민 지음/320쪽·1만 원·문학동네

2000년 장편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개봉을 앞둔 영화 ‘모던보이’의 원작)로 이름을 알린 이지민(34·당시 이지형) 씨.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는 등단 8년 만의 첫 소설집이다.

작가가 ‘일시적 루저(loser)’라고 인물들을 가리켰듯, 소설의 주인공 대부분은 ‘망가진다’.

가령 표제작에서 화자는 ‘데이트한다’고 생각했던 남자에게서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다”는 말을 듣는다. 두 달쯤 지나니 그 남자에게서 연락이 온다. 안부전화라는데 금세 실연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그 남자에게 화자가 한 일은 집까지 바래다주기.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냐는 주변 사람들의 타박에도 아랑곳하지 않지만, 결과는 다시 한 번 차이기다.

읽는 사람도 이런 바보, 하면서 혀를 찰 만한 이런 상황은 단편 ‘오늘의 커피’에서도 이어진다.

회사 동료들한테 배신당하고 사표를 낸 36세 인옥 씨. 오랜 꿈인 카페를 차렸는데 갈수록 태산이다. 낮에는 파리 날리고 밤에는 술 취한 회사원들만 오고,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 먹고 배탈 난 손님들이 고소를 하겠다며 난리다.

주인 없는 ‘무인카페’로 만들고 나서야 장사가 잘되니 인옥은 그토록 좋아하는 카페에 들어갈 수가 없다.

예뻐지고 싶어 성형을 거듭하는 여성(‘대천사’), 어머니한테 사업자금을 얻어내려고 혈안이 된 아들(‘타파웨어에 대한 명상’)…. 9편의 이야기는 ‘되지 않을 일에 왜 저렇게 매달릴까’ 싶은 사람들의 사연이다. 그런데 읽다 보면 이 답답한 모습들이, 오늘날 대부분의 초상이 아닐까 싶다.

혀 차던 독자들도 문득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듯.

촘촘한 여타 단편과 달리 이 씨 작품의 문체 밀도는 낮은 편. 그만큼 수월하게 잘 읽힌다. 한 편 한 편 흥미로운 서사도 돋보인다. 장편 등단이라는 이력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부분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