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입을 옷과 지금 당장 입을 옷.’
스타가 광고 모델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짧은 순간 눈길을 붙잡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볼거리가 넘치는 요즘 ‘잠깐만 주목’ 해주길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의 이목을 끄는 스타는 고액의 개런티를 받고 광고에 출연한다. 시선 고정을 시킨 다음의 문제는 메시지 전달이다. 머릿결이 찰랑찰랑해지고, 무이자 3개월 즉시 대출 가능하며, 생각대로 하면 다 된다는, 광고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들은 스타의 멋진 모습에 넋을 잃고 있는 동안 귓 속을 파고든다.
광고처럼 스타와 끈끈한 밀월 관계를 맺고 있는 분야 중 하나는 바로 패션이다. 스타에겐 의상 협찬이 줄을 서고, 패션쇼 맨 앞줄에 앉을 수 있는 나름의 특권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패션이 스타를 통해 대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앞으로 입어야 할 옷’과 ‘지금 당장 입어야 할 옷’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 실험과 동경, 스타 사용 설명서
새 옷을 선보이는 패션쇼는 앞으로 트렌드를 이끌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담긴 의류가 주류인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와 지금 당장 입어도 되는 기성복 위주의 ‘프레타포르테’(pr^et-porter)로 나뉜다. 이렇듯 패션은 항상 실험과 동경이란 코드로 양분돼 사람의 감각을 자극하고 또한 입기를 권장해왔다.
정준호와 김하늘. 두 사람은 현재 TV 드라마에서 인기 스타로 등장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드라마 주인공으로 배우가 등장한 게 처음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대중의 큰 호응과 사랑을 받고 있다.
‘저렇게 솔직해도 되나’는 우려를 나을 정도로 픽션과 논픽션의 세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연기도 화제이지만 극중에서 입고 나오는 옷 또한 나란히 화제다. 공교롭게도 정준호와 김하늘은 스타가 패션계에 기여하는 두 가지 역할을 사이좋게 나눠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정준호는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무모하리만치 실험적인 패션을, 김하늘은 SBS 드라마 ‘온에어’를 통해 당장 사고 싶게 만드는 동경의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 실험의 대상, 정준호의 경우
“왜 자꾸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옷을 주느냐” 정준호가 요즘 자신의 스타일리스트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가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입는 옷들을 살펴보자. 색동저고리 수준의 총천연색 상의는 물론, 종아리에서 바지 단이 끝나는 애매한 길이의 이른바 ‘배기 팬츠’까지 소화한다. 그의 실제 나이는 차치하고 극중 나이가 30대 초반임을 고려했을 때도 이러한 옷차림은 가히 ‘혁명’에 가깝다.
정준호의 패션을 맡고 있는 스타일리스트 전미선 씨는 드라마 의상을 선택할 때의 최우선 기준이 ‘튀는 옷’, 즉 앞으로 유행할 옷들이라고 말했다. 전미선 씨는 “혁신적이어서 아무나 입을 수 없는 옷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스타의 특권이고, 또한 역할이다”고 강조했다. 전씨는 “솔직히 정준호 본인도 어떤 옷은 너무 튀어 입기를 꺼릴 때가 있다”며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류는 장광효의 ‘카루소’ 박종철의 ‘실링스톤’ 등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가 주를 이룬다”고 밝혔다.
○ 동경의 대상, 김하늘의 경우
‘온에어’ 김하늘의 옷은 만만하다.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약간의 투자와 발품 파는 노력만 기울여 김하늘이 될 수 있다. ‘사서 입고 싶다’는 동경을 유발하되 과거처럼 엄청난 고가가 아닌 매우 합리적인 지출로 그 욕구를 채울 수 있다는 게 요즘 패션의 경향. 김하늘의 스타일리스트인 고병기 씨는 “동대문 표로 불리는 무명 브랜드와 중고가 명품이 뒤섞인 ‘믹스 앤 매치’가 김하늘 패션 유행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고병기 씨는 “싼 것과 비싼 것, 무명 브랜드와 명품 브랜드가 이제는 옷을 잘 입는다는 기준으로 기능을 상실했다”며 “어떻게 조화롭게 입느냐가 멋쟁이의 관건이며 그런 면에서 ‘온에어’ 속 톱 배우 오승아는 ‘믹스 앤 매치’라는 커다란 흐름을 이끄는 트렌드 리더”라고 밝혔다.
고씨는 이어 “드라마에서 명품 백과 액세서리가 두드러지게 보여서 그렇지, 실제로 김하늘은 ‘온에어’에서 상당한 수의 보세 의류와 저가 브랜드를 입고 있다.”고 강조했다.
허민녕 기자 justin@donga.com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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