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의 발견과 마찬가지로 과학에 있어서도 실질적인 신세계는 어느 결정적인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과학이 의존하고 있었던 그 토대를 박차버리고, 말하자면 허공에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을 때에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리학과 철학-종교-역사의 대화록
물리학자인 이종필 KAIST 고등과학원 연구원은 이 책의 추천 사유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대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책. 양자역학의 태동으로 과학혁명의 격동에 휩싸였던 거장들의 생각의 흔적들을 뒤쫓을 수 있는 명저.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천재들의 치열한 고민이 절절히 묻어나는 책.”
1927년 물질을 파동(波動)과 입자(粒子)의 두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양자역학을 창시하고 이것을 불확정성의 원리로 정식화한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1976). 이 같은 연구 업적에 힘입어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하이젠베르크의 삶과 과학정신을 잘 보여주는 자전적인 글이다. 19세 때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나눴던 대화로 시작해 50여 년 동안 독일 출신의 아인슈타인, 덴마크의 보어 등 위대한 과학자들과 나누었던 지적 편력, 과학자로서의 고뇌가 진지하게 펼쳐진다.
이 책의 메시지는 다양하다. 물리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양자역학의 창시와 불확정성 원리의 정립 과정을 목도할 수 있다. 과학과 세상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 온 사람이라면 과학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하고 때로는 어떻게 거리를 두면서 과학의 순수성을 지켜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물리학과 철학의 관계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하이젠베르크가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 칸트의 인과율 철학을 공부하면서 물질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에 대해 어떻게 고민했는지 그 궤적을 따라가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물리학과 철학, 물리학과 종교, 물리학과 역사의 대화록인 셈이다.
이렇게 다양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경계를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요즘 말하는 통섭이다. 통섭은 그의 삶과 과학에 있어 일관된 대원칙이었다.
‘부분과 전체’라는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과학은 철학 없이 발전할 수 없고, 과학은 세상과의 소통 없이 발전할 수 없다. 과학뿐만 아니라 어느 학문도 단순히 그 분야의 ‘부분적’인 성과에 의해서 홀로 발전할 수 없다. 다른 모든 분야의 ‘전체적’인 지식의 토대 위에서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양자역학과 불확정성의 원리 역시 하이젠베르크라는 한 천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많은 과학자와 철학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그는 스스로 역설하고 있다.
이 같은 통섭은 과학과 인류, 과학과 정치와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이젠베르크는 늘 “과학은 과학을 둘러싸고 있는 인류와 한 시대의 정치 상황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과 정치를 넘나들면서 부분과 전체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젊은 시절 하이젠베르크가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고민한 일도, 핵무기 개발이 가져올 파괴력을 우려해 독일의 핵무기 개발을 늦추려 노력한 일도 이러한 통섭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부분과 전체를 아우르고, 경계를 넘나들며 통섭의 길을 걸었던 하이젠베르크. 그의 과학은 그래서 인간적이고 감동적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