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힘든 거 다 안다. 조금만 더 힘내자.”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남자레슬링자유형 박장순(41) 감독의 목소리가 커진다. 오후 훈련의 막바지, 선수들의 체력은 이미 고갈된 상황. 5분 스파링 후 1분 휴식이 이어진다. 스파링 때는 매섭던 눈초리가 휴식 시간만 되면 ‘감독님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듯 애절하다.
‘가자 베이징 올림픽 8연속 금메달 획득을 향해.’ 필승관에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역대 금메달리스트들의 이름 사이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74kg 박장순’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제가 제일 잘 알죠. 하지만 그럴수록 메달에 가까워진다는 사실도 잘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박 감독의 몸은 여전히 탄탄하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함께 하기도 하고, 답답함을 느끼면 선수들과 몸을 부딪치기도 한다. 선수들로서는 우상과 겨뤄본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
3월 18일부터 23일까지 제주에서는 아시아레슬링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대회 1주전, 박 감독은 선수시절 자신과 같은 체급인 조병관(27)을 상대했다. “평소에는 경량급만 잡아주시거든요. 그날따라 기분이 좋으시더라고요. 저야 좋았죠. 한 수 가르쳐주신다니까.” 조병관은 황소처럼 박 감독을 향해 달려들었다. 머리에 박 감독의 안면이 닿는 느낌이 있었지만 흔히 있는 일이라 신경 쓰지 않았다.
코가 약간 부어올랐지만 누구에게도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박 감독은 꼿꼿하게 1주일간 훈련을 지도하고 대회 일정을 마쳤다. 그 다음에야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연골이 부러졌다는 판정. 수술까지 받았다.
“감독님께 죄송해서 죽을 힘을 다했습니다.” 역시, 용장 밑에 약졸 없는 법이다. 박 감독의 부상 투혼(?)에 힘입어 조병관은 아시아 최정상에 올랐다. “이제 다 나았습니다. 좋은 결과만 거둔다면야….” 박 감독은 또 다시 후배들과 ‘부딪칠’ 작정이라고 했다.
태릉=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