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책갈피 속의 오늘]1983년 대구 ‘초원의 집’ 화재 25명 사망

입력 | 2008-04-18 03:01:00


죽음의 ‘디스코’였다.

새까맣게 타버린 ‘초원의 집’. 여기저기 나뒹굴던 신발은 리어카로 한 수레나 실려 나왔다. 귀청이 찢어질 만큼 요란한 음악 소리, 번쩍번쩍하는 조명으로 천장에 불이 붙었는지조차도 알기 어려웠다. 10대들의 춤 열기로 실내는 후끈 달아올랐다.

누군가 “불이야!”라고 외쳤다. 실내는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천장에서 붙기 시작한 불은 삽시간에 홀을 태웠다.

“불이야! 불! 불!” 150여 명의 청소년이 한꺼번에 출입구 계단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하지만 계단 너비는 2m가 채 안 됐다. 출구는 가파른 경사였고 또 한 번 꺾어지는 복잡한 통로였다. 한 사람이 넘어지자 뒤쫓아 오던 사람들이 줄줄이 넘어졌다.

출구는 이렇게 막혀 버렸다. 불구덩이 속에서 “살려 달라”는 아우성이 이웃 건물에까지 들렸다.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누구도 근접하기 어려웠다.

1983년 4월 18일 오전 1시 30분. 대구 중구 향촌동의 디스코클럽 ‘초원의 집’에서 불이 나 춤을 추며 놀던 청소년 25명은 이렇게 숨졌다. 불은 1시간 반 만인 오전 3시에 꺼졌지만 희생자는 속출했다.

사망자 25명, 부상자 70명.

◇사망자=정○○(18·여·왜관 S여고 2년) 이△△(18·여·대구 J여상 야간부 1년) 이××(18·남·D공고 야간부 전기과 1년) 윤▽▽(18·여·공장 직공)….

당시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에 보도된 사망자 명단이다.

초원의 집은 낡은 목조건물 2층에 있었다. 방화시설은 없었다. 손님은 대학생, 재수생, 고교생, 고교를 갓 나온 사회 초년생 등 20세 전후가 대부분이었다. 330m²(100평)의 디스코클럽에는 의자 320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평일엔 150여 명이, 주말에는 300여 명이 몰렸다.

디스코클럽은 당시 청소년들에게 ‘해방구’였다. 까까머리에다 까만 교복에 짓눌려 있던 고등학생들은 정부의 교복 및 두발자율화 조치 이후 디스코클럽을 쉽게 드나들었다.

25년 전 대구 초원의 집 화재 사건은 최근 일부 대학가와 강남지역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클럽’을 떠올리게 한다. 10대와 20대들이 몰려드는 이곳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주말엔 500명까지 몰려들어 좁은 공간에서 ‘부비부비 춤’을 춘다.

클럽은 지하 1층은 물론 지하 2층과 3층까지 파고들고 있다. 깊숙한 지하에다 통로마저 좁아 불이라도 나면 또 다른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을까 두렵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