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오직 앞만보고 걷는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신경림 ‘낙타’ 전문 》
○직장 사표내고 2003년부터 ‘길위의 삶’
‘까탈이 유목민’ 김남희(38) 씨가 돌아왔다. 거의 1년 만이다. 낙타처럼 터벅터벅 유럽을 떠돌았다. 안달루시아(스페인) 돌로미티(이탈리아) 샤모니(프랑스)를 어슬렁거리다가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땅을 거닐었다. 가녀린 체구(158cm)에 12∼20kg 배낭. 하루 생활비 15∼40유로(약 2만3000∼6만3000원). 벌써 6년째 ‘길 위의 삶’이다.
김 씨는 2003년 1월 길을 떠났다. 방 빼고 적금을 깨 배낭을 꾸렸다. 6년 다닌 직장(주한 터키대사관)은 그 직전에 그만뒀다. 문득 겁이 왈칵 났다. 누가 잡아줬으면 싶었다. 하지만 2001년 여름휴가 때 해남 땅끝에서 강원 고성까지 800km ‘나 홀로 걷기여행’을 해낸 강단이 있었다.
라오스 미얀마 중국 네팔을 주뼛주뼛 기웃거렸다. 모로코 에티오피아 탄자니아도 가봤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비슷했다. 2005년 여름엔 스페인 산티아고 길(850km)을 36일 동안 걸었다.
“마지막 도착지인 산티아고 성당에서 한참 울었다. 그냥 복받쳐 눈물이 나왔다. 난 무슨 거창한 여행 철학 같은 거 없다.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라는 말도 잘 모르겠다. 그냥 저 밑바닥에서 용솟음치는 뭔가에 홀려 떠날 뿐이다. 걷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아무 생각 없이 무심히 걷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땐 날숨들숨과 발걸음 그리고 몸이 하나가 된다. 주위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몸이 무심하게 나아간다. 행복하다. 그렇다고 산티아고 길이라서 특별할 것은 없다. 길은 어디나 똑같다. 다만 곳곳에 게스트하우스 같은 시설이 잘 돼 있다는 것이 다르다. 세계 각국에서 오는 순례자들과의 교감도 뭉클하다.”
○내가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사람은 밖에 있을 땐 안이 그립다. 안에 있을 땐 또 밖이 생각난다. 김 씨도 벌써 서울이 답답하다. 정착민이 된다는 것은 늘 숨이 막힌다. 손 전화에 저장된 인연의 끈들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한순간 손을 잘못 놀린 탓이다.
오자마자 겨우 구한 ‘지상의 방 한 칸’. 신경림 황지우 안도현 허수경 조용미의 시들을 읽는다. ‘이것이 인간인가(프리모 레비)’ ‘마음(나쓰메 쇼세키)’ ‘우울한 열정(수잔 손택)’ ‘소년의 눈물(서경석)’ 같은 책들을 훑는다. 틈틈이 이번에 다녔던 곳들의 여행기도 쓴다. 곧 그의 다섯 번째 책이 나올 것이다.
그는 ‘일시 정착지’에서 반경 1km를 넘지 않으려 한다. 가끔 예외는 있다. 매주 월요일 꼭 북한산에 오른다. 4시간 코스다. 가수 이문세 등 설레발산악회원들과 함께 한다.
“언젠가 인도 라다크에서 여든이 넘은 미국 할머니가 열심히 봉사활동 하고 있는 것을 봤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너무 좋고 기뻐서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 그때부터 나도 ‘내가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라고 맘먹었다. 난 원래 소심하고 까탈스럽다. 그러나 이제 좀 둥글어졌다. 남을 긍정하고, 나를 긍정하고, 현재를 긍정한다. 나의 아주 못된 부분조차 체념, 절망하는 게 아니라 담담하게 본다. 그걸 바탕으로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힘쓴다.”
김 씨는 제3세계 빈곤 문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결국 ‘우리 모두와 그물코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소리 없이 돕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동참을 호소하거나, 사진전 등을 열어 수익금을 이곳 저곳으로 보낸다. 자신의 책 인세를 보태기도 한다. 파키스탄 산골 여고생 장학금 지원 때는 주위 사람들에게 e메일 딱 한번 보냈는데도 400만 원 가까이 모여 감격했다. 티베트 어린이 탁아소건립, 인도 불가촉천민 무료클리닉, 국제에이즈센터 지원에도 힘을 보탰다. 앞으론 모로코소년원 아이들에게 책 보내주기도 계획하고 있다.
“아무것도 안하면서 세상에 불평불만 하는 것은 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만 있었으면 무심하게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에티오피아 여행 중엔 그 나라 사람들이 너무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보고 거의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한비야 씨가 세계 배낭여행을 하다가 마지막에 구호 활동을 하게 된 것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진다.”
그는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줄 때 3가지 원칙을 지킨다. 첫째, 아이들한테는 절대 주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구걸에 익숙해지면 평생 습관으로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둘째, 사지 멀쩡한 어른들에게도 주지 않는다. 셋째, 노인이나 장애인에게는 준다. 그러다가 에티오피아에 갔을 때 아주 혼났다. 장애인이 끝도 없었다. 오른쪽 주머니에 잔돈을 잔뜩 바꿔갔는데도 금세 떨어져버렸다.
○9월에 멕시코 칠레 등 중남미 종단
그의 e메일(skywaywalker@hanmail.net)과 홈페이지주소(www.skywaywalker.com)엔 나란히 ‘스카이웨이워커’라는 이름이 있다. 우리말로 ‘하늘 길을 걷는 사람’ 정도로 풀이될까? 아니면 ‘삶은 결국 하늘 길로 가는 과정’이라는 뜻일까.
“어느 인디언의 이름 스카이워커(skywalker)에다가 웨이(way)를 덧붙인 것이다. 인디언들이 세상 사물에 붙인 이름을 보면 그 자체가 철학이다. 가령 1월은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2월은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 3월은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4월은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 그러다가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2월은 ‘무소유의 달’ 혹은 ‘침묵의 달’ 이런 식이다. 정말 얼마나 소박하면서도 뜻이 깊은가?”
김 씨는 9월 즉 인디언식으로 ‘작은 밤나무의 달’에 다시 유목민으로 나선다. 이번엔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중남미 종단. 그 다음은 그도 모른다. 다만 언젠가는 서라벌∼북한∼이스탄불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서 가고 싶은 거다.
모든 경계엔 꽃이 핀다. 유목과 정착의 경계에도 꽃이 핀다. 하지만 그 경계는 늘 위태롭다. 아슬아슬하다. 김 씨는 여행이 곧 삶인 세상을 꿈꾼다. 삶이 그대로 여행이 되는 경지를 바란다. 하지만 늘 경계선을 서성인다. 쓸쓸하다. 뭔가 헛헛하다. 그래서 길을 또 떠난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