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소나기’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며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곧 장대처럼 쏟아지는 소나기…. 소년은 소녀를 업고 개울을 건넌다.
무대에 비가 내린다. 배우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을 만큼 제대로. 뮤지컬 ‘소나기’에 대한 평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관객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적셔주는 이 장면만은 이견이 없을 최고의 장면이다.
5분 남짓한 이 장면에서 무대에 쏟아지는 빗물의 양은 3t. 개울에 쓰인 3t 분량의 물까지 총 6t 분량의 물을 과감히 쏟아 부었다.
서울시뮤지컬단의 뮤지컬 ‘소나기’(연출 유희성)는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는 황순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첫사랑의 아련함과 순수함’이라는 원작 소설의 정서는 뮤지컬에서는 ‘조약돌’이라는 상징물에 담겨졌다. 서로에게 끌리는 소년과 소녀는 조약돌을 하나씩 나눠 갖고 조약돌에 담긴 서로의 마음을 간직한다.
이때 소년과 소녀가 함께 부르는 듀엣곡 ‘조약돌’은 이 뮤지컬에서 가장 돋보이는 서정적인 곡이다. 따라하기 쉬운 서정적인 멜로디 덕분에 공연장을 나선 후에도 귓가에 오래 맴돈다. 2004년 초연 당시 작품의 완성도에서 아쉬움이 있었는데도 재공연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것은 창작뮤지컬로는 드물게 음악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재공연에서는 초연 당시 문제점을 꽤 극복했다. 무대 전환 시 암전이 잦아 흐름이 끊기던 문제도 개선됐다. 초연 때는 교사가 된 소년이 학생들에게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돼 공연 내내 현재와 과거가 병렬식으로 이어져 산만했지만 2008년 버전에서는 극의 형식이 바뀌었다.
성인이 된 동석이 소나기 예보를 듣고 추억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훨씬 간결해졌고 연출도 깔끔해졌다. 2시간이 넘던 공연 시간도 1시간 반 정도로 다듬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드라마의 허점은 아쉽다. 운동권 대학생인 소년의 형은 단순한 원작의 스토리에 극적인 구성을 불어넣기 위해 삽입된 캐릭터지만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총 14곡의 노래(변주곡 포함) 중 형과 어머니, 소년 등의 솔로곡과 이중창, 삼중창에 4곡을 할애했을 만큼 비중이 적지 않지만 소년에게 하모니카를 주고 가는 것 외엔 극에서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 뮤지컬은 199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하지만(90년대 스타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가 등장한다)등 데모 주동자로 형사에게 쫓기는 운동권 형은 80년대 모습으로 그려진다.
유희성 연출은 ‘소나기’에서 가장 중요한 ‘소년’ 역에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인 승리를 캐스팅했다. 이 아이돌 스타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았지만 승리의 부족한 연기력을 순수한 소년과 딱 맞는 이미지로 극복했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창작 뮤지컬 사상 최대 흥행작이 될 ‘소나기’의 성공은 캐스팅의 ‘승리’이기도 하다. 5월 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세종 M씨어터. 02-399-1114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