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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나의 조국은 아메리카야 그들이 끼워주진 않지만…

입력 | 2008-04-19 02:58:00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전 2권)/이민진 지음·이옥용 옮김/528쪽·각 권 1만3000원·이미지박스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39·사진) 씨의 이름은 지난해 국내에 알려졌다. 그의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은 지난해 유에스에이투데이, 뉴스위크 등에서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이창래(장편 ‘네이티브 스피커’ ‘제스처 라이프’ 등으로 미국 문단의 스타가 된 재미교포 소설가)를 이을 작가’라고 평하기도 했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캠퍼스에서의 조승희 사건과 맞물려, 재미교포의 정체성을 다룬 이 소설은 특히 주목을 받았다.

그 ‘백만장자…’가 번역 출간됐다. 첫 장부터 한인 세탁소 집 딸의 비애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소설이다. 젊고 유능한 케이시 한. 맨해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님의 고달픈 삶 너머 환하고 근사한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 여성이다.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케이시는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며, 모두들 부러워하는 골프 실력과 부유한 친구들, 그리고 인기 많은 백인 남자친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직업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시간을 갖고 싶다.

자식이 변호사든 의사든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직업을 갖는 게 한국인 이민자의 꿈이자 일생의 목표다. 그 꿈을 거스르려는 딸을 아버지는 인정할 수 없다. 한국인 가정에서 매질은 당연하지만 미국에선 감옥행이기 때문에, 케이시는 노한 아버지에게 맞고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소설은 눈은 높지만 차가운 현실에 맞닥뜨려야 하는 케이시의 하루하루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백인 남자친구는 케이시 몰래 그룹섹스를 하다가 들키고, 케이시는 친구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더부살이하지만 좀처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케이시의 이런 모습에, 순진하게만 살다가 남편의 외도에 엄청난 충격을 받는 엘라, 권위적인 남편에게 복종만 하다가 뒤늦게 사랑에 빠지는 리아 등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 여성들의 모습이 겹친다.

케이시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작가의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7세 때 이민한 그는 세탁소를 하는 부모와 함께 ‘쥐가 나오는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자랐으며, 예일대를 나오고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가 됐다. 건강 악화로 변호사를 그만둔 뒤 그는 꿈이었던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집필에 몰두했다. “미국 사회에 동화되고 싶은 공동의 소망을 가진 이민자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소란을 피우지 않기 위해 입을 꼭 다물어야 했다”고 말하는 작가. 외모가 다르다는 것 때문에 미국 주류 사회로의 완벽한 동화가 불가능한 현실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 조목조목 짚는다.

이민진 씨의 작품은 ‘남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다. 세대 간 갈등, 모두가 동경하지만 상위 1%만 누릴 수 있는 특혜 같은 것들은 국내 독자들도 공감할 만한 부분이다. ‘미국인들은 아시아계를 벌레라고 생각한다. 아주 착한 개미거나 훌륭한 일벌이나 아니면 징그러운 바퀴벌레다’ 같은 직설적인 표현으로 케이시 또는 이민진 씨의 고민이 어떤 것인지를 일러준다.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이야기 솜씨도 돋보인다. 미국 평단은 작가에 대해 ‘제2의 제인 오스틴’(‘오만과 편견’ ‘지성과 감성’을 쓴 19세기 영국의 여성 작가)이라고 호평을 보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