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소니/장세진 지음/380쪽·1만7000원·살림
2000년까지만 해도 소니의 시장가치는 삼성전자의 4배에 이르렀다. 그러다 2002년부터 삼성전자가 소니를 추월하더니 그 폭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졌다. 비즈니스위크는 2005년 “삼성전자는 파트너와 협력하는 방법부터 시장의 추이를 읽는 것까지 소니가 앞으로 수행해야 할 많은 과제를 잘 수행해 왔다”고 평가했다.
20세기 후반 전자산업의 최강자 자리를 누렸던 소니가 갑작스레 쇠락하고, 삼성전자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궁금증을 가졌다. 고려대 국제경제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데이터를 뒤지고, 소니와 삼성전자의 관계자들을 만난 뒤 최근 10년간 두 회사에 대한 평가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우선 두 회사의 성장사부터 상세히 살폈다. 소니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해 왔다. 워크맨, 미니디스크,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제품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미 시장이 성숙해진 일상재 제품의 생산에 주력하면서 비용 절감과 한발 앞선 제품 개발로 경쟁 우위를 추구해 왔다. 이런 전략으로 D램, 플래시메모리, 액정표시장치(LCD) 같은 제품에 주력했다.
두 회사의 이런 전략은 디지털 시대에 들어 커다란 차이로 나타났다. 상품기획 단계에서부터 표준을 스스로 정하고 소형화 기술을 중요시한 소니의 경쟁력은 디지털 시대에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는 일상용품으로 바뀌어 가는 디지털 제품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스피드’에 치중했다.
디지털 시대에 대한 대응의 차이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이런 단순한 전략 차이로는 두 기업의 성과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고 말하고 근본적인 영향으로 기업 문화와 조직의 프로세스를 꼽았다.
소니는 여러 사업부가 독립성을 갖는 컴퍼니제 형태를 띠고 있다. 문제는 컴퍼니가 너무 독립적이어서 디지털 시대의 중요한 화두인 부문 간 융합이 어렵다는 것이다. 관리자형 최고경영자(CEO)를 두고 있어 본사 차원에서 문제를 조정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삼성전자 역시 사업부제 조직이다. 하지만 다른 점은 스태프 조직인 그룹의 전략기획실이 전체를 통괄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했다.
신제품 개발 때 설계 단계부터 공동으로 할 수 있고,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있을 때 그룹 내 사업부에 우선 공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삼성전자 역시 잠재적인 문제점을 많이 갖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선 중요한 의사 결정은 전략기획실이 개입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문제가 불거질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또 경영자들 간에 ‘상대방이 이기면 내가 진다’는 사고가 지배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들었다. 이중 삼중으로 통제를 받음에 따라 조직의 피로도가 높다는 점도 제기됐다.
저자는 “공포 경영으로도 불리는 문화때문에 삼성의 직원들은 재직 중에 엄청난 충성심을 갖지만 해임당한 경우에는 그에 버금가는 배신감과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고 꼬집었다.
또 “후발주자로서의 겸손함이 사라지면서 내부의 자만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경영 성과가 높아짐에 따라 내부 조직의 문제에 둔감해지고 문제점을 스스로 교정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졌다”고 지적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