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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라쇼몽’

입력 | 2008-04-21 02:54:00


《일본 구로자와 아키라(1910∼1998) 감독의 ‘라쇼몽(羅生門)’은 1951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수작입니다. 당시 이 영화를 본 서양인들은 “서양적인 영화문법과 동양적인 정신세계를 화학적으로 결합한 영화미학의 극대치”라고 극찬했습니다. ‘라쇼몽’은 애니메이션 ‘빨간 모자의 진실’과 흡사한 이야기 전개방식(미스터리 기법)을 보여줍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목격자마다 진술이 모두 엇갈리면서 사건의 실체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과연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영화는 충격적인 대답을 들려줍니다.》

진실이라는 허울,

그 뒤엔 이기심과 거짓말

[1] 엇갈리는 진술

전국시대 일본. ‘라쇼몽’이란 간판이 달린, 다 쓰러져 가는 문 밑에서 나무꾼, 승려, 그리고 걸인이 마주칩니다. 나무꾼은 단도에 찔려 숨진 한 사무라이를 발견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줍니다. 관청에선 살인사건의 현장에 있던 3명을 불러와 사건의 실체에 대해 진술을 받습니다.

첫 번째로 산적두목 ‘타조마루’가 말합니다.

“한 사무라이와 그 아내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매혹적인 여인의 모습에 흑심이 일었다. 사무라이를 포박한 뒤 그 아내를 겁탈했다. 저항하는 듯 보였던 여인이 돌연 열정적으로 변했다. 그녀는 나에게 ‘남편을 죽여달라’고 요구했다.”

두 번째로는 사무라이의 아내가 진술에 나섭니다.

“산적에게 능욕을 당한 뒤 포박당해 있던 남편을 바라봤다. 남편은 나를 향해 차가운 증오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단도를 들고 남편에게 다가가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며 울부짖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의 가슴에 단검이 꽂혀있었다.”

자, 다음으로 진술에 나선 사람은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살해당한 사무라이였습니다. 사무라이는 이미 죽었건만, 어떻게 진술을 할 수 있느냐고요? 사무라이의 원혼이 영매(靈媒)의 입을 통해 진술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산적은 아내를 욕보인 뒤 ‘남편을 버리고 나와 결혼하자’고 아내를 꾀었다. 아내는 산적에게 ‘남편을 죽여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극심한 배신감과 절망감 속에서 단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것으로 진실공방은 막을 내리는 걸까요? 아닙니다. 이 모든 사건을 풀숲에서 몰래 지켜본 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나무꾼이었죠. 나무꾼은 자신이 본 사건의 실체를 사람들에게 들려줍니다.

“산적은 여자에게 ‘내 아내가 되어 달라’고 통사정했다. 여자는 남편의 포박을 풀어주더니 ‘두 남자가 결투를 하라. 이긴 사람을 따르겠다’고 했다. 그 순간 남편은 ‘난 저런 여자 때문에 내 목숨을 걸고 싶지 않다’면서 뒷걸음질 쳤다. 두 남자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서로 비겁하게 도망 다녔다. 그러다가 사무라이가 발을 헛디뎌 칼에 맞았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등장인물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선입견은 무참히 깨집니다. 터프하고 폭력적으로만 보였던 산적은 알고 보니 비열하고 소심한 겁쟁이였습니다. 용감하고 정의로운 줄 알았던 사무라이는 목숨에 연연하는 비겁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또 정숙한 여인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무라이의 아내는 기실 욕정의 화신이었습니다.

우리는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산 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죽은 이마저도 거짓말을 일삼는다니…. 영매를 통해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눈물겹게 늘어놓았던 사무라이의 원혼(원魂)도 알고 보니 자신을 미화(美化)하는 거짓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놈의 거짓말. 인간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거짓말이라는 저주스러운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을까요? 이 영화에 따르면, 대답은 “예. 그렇습니다”입니다. 걸인이 하는 다음 대사에는 ‘라쇼몽’이 인간존재와 인간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드러납니다.

“이 세상은 개 같이 사는 게 잘사는 길이야. 이기심이 없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어!”

그렇습니다. 이기심은 기근이나 화재나 전쟁보다도 더 사악한 악의 근원입니다. 인간은 본디 이기심의 노예이기에 악마적인 거짓말을 멈출 수 없습니다. 숙명처럼 말이지요. ‘이기심’과 ‘거짓말’,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절망적인 키워드입니다.

[3] 더 깊이 생각하기

자, 그럼 다시 살인사건으로 돌아와 볼까요? 살인사건의 진정한 실체는 뭘까요? 풀숲에서 시종 사건을 목격한 나무꾼의 진술내용이 바로 ‘진실’이라고요?

불행히도, 아닙니다. 이 영화는 나무꾼의 진술조차도 거짓말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마치 진실만을 말하는 듯하던 나무꾼. 하지만 알고 보니 그도 사무라이의 아내가 사건현장에 떨어뜨린 보검(진주가 박힌 단도)을 몰래 훔친 뒤 “보검의 행방은 모른다”고 시치미를 뗀 거짓말쟁이였으니까요.

여기서 영화는 우리에게 충격적인 메시지를 토해냅니다. 진실이란 어쩌면 인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애니메이션 ‘빨간 모자의 진실’이 “진실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주장한 데 비하면 ‘라쇼몽’의 메시지는 너 암울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체념으로 끝을 맺진 않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을 심어놓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스님은 마치 자기 맹세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서로를 못 믿는다면 여긴 지옥이나 다름없어. 난 인간을 믿어. 이 세상이 지옥처럼 되지 않길 원해!”

거짓말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믿음은 인간의 책무가 아닐까요? 영화는 이런 물음을 은근슬쩍 남기면서 ‘구원’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타진합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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