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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45년 트루먼-몰로토프 회동

입력 | 2008-04-23 03:01:00


“당신네가 약속을 이행하는 걸 기다리다 이젠 지쳐 버렸소.”

1945년 4월 23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을 방문한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소련 외교장관을 만나자마자 거침없이 쏘아붙였다. 소련이 공산세력이 주도하는 폴란드 임시정부와 조약을 맺은 것은 얄타회담의 합의를 어긴 약속 위반행위라는 주장이었다.

당황한 몰로토프는 화제를 딴 데로 돌리려 했다. 하지만 트루먼은 다시 몰로토프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게 전부요, 몰로토프 씨. 스탈린 원수에게 내 의견을 전해준다면 고맙겠소.”

분개한 몰로토프도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소”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트루먼은 “당신네가 약속을 지켰다면 이런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겠지”라고 마지막 일침을 가했다.

씩씩대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몰로토프를 바라보면서 트루먼은 자못 득의만면한 표정을 지었다. 트루먼은 측근에게 “몰로토프에게 (알아듣기 쉽게) 한 음절짜리 단어들로 얘기해줬지. 그리곤 턱에 스트레이트로 원투(펀치)를 날렸어”라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뇌출혈로 사망하면서 부통령이던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한 지 열하루 만의 일이었다.

대학 중퇴 학력의 변두리 출신인 트루먼은 외교정책에는 문외한이었다. 루스벨트는 주요 외교적 결정을 부통령에게 비밀로 했고, 심지어 원자폭탄 개발 프로그램의 존재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열심히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트루먼은 벼락치기 공부를 통해 그동안 루스벨트가 스탈린에게 너무 협조적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침 몰로토프의 워싱턴 방문은 트루먼이 소련에 본때를 보일 절호의 찬스였던 것이다.

소련은 이날 트루먼의 태도야말로 미국이 협력 노선에서 대결 노선으로 외교정책을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냉전 역사가들도 1947년 트루먼 독트린으로 구체화되는 미소 간 냉전은 이미 이때 시작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어쨌든 트루먼은 오늘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의 전략을 마련한 ‘결단의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트루먼은 종종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장기전’ 밑그림을 그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비교되곤 한다.

사실 두 사람은 단순 명쾌한 것을 좋아하고 세상을 선과 악, 적과 동지로 구분하는 취향도 닮았다. 그런 탓일까. 최악의 국내 지지도 탓에 고전했던 트루먼만큼이나 부시의 지지도 역시 바닥을 헤매고 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