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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 이야기]“진다는 것은 날 파괴한다는 것”

입력 | 2008-04-24 02:58:00


지난주 아스널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TV로 지켜본 사람들은 1-2로 패한 아스널 아르센 벵거 감독의 얼굴을 지켜봤을 것이다. 마치 길 잃은 어린 양 같았다.

아스널은 리그 우승을 위해 수개월간 싸워왔다. 하지만 이제 에너지를 잃었다. 마라톤 선수가 레이스 도중 벽에 부딪히는 것과 같았다. 벵거는 “패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내 자신이 파괴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음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 우리는 인생을 마칠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벵거는 사려 깊고 자존심도 강하다. 그와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겉으로는 친구인 척하지만 으르렁거리는 사이다.

그러나 벵거가 “파괴됐다”고 느끼는 그 순간 퍼거슨은 벵거에게 위로의 포옹을 했다.

퍼거슨은 기자회견에서 “아스널이 더 멋진 경기를 했다”고 말했다. 퍼거슨은 “아스널과 맨체스터는 라이벌이지만 언제나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경기를 하려고 노력한다”고도 말했다.

아스널은 맨체스터 경기 일주일 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도 리버풀에 져 탈락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쳤다. 아스널이 먼저 골을 넣었다. 전반에는 지금까지 잉글랜드에서 열린 경기 중 가장 멋진 축구를 보여줬다.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알렉산데르 흘레프, 에마뉘엘 아데바요르, 마티유 플라미니가 보여준 움직임과 패스, 창조력은 세계 최고였다. 사실 그때까지 그들이 보여준 것은 잉글랜드적인 게 아니었다. 하지만 1-2로 뒤지던 후반 39분 시오 월컷은 약 70m를 드리블해 들어가며 상대 수비 네 명을 제치고 아데바요르에게 골을 만들어줬다. 전반과 이 골 사이 동안 아스널은 경기에서 질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골을 더 내줬지만 정말 멋진 경기였다.

벵거는 리버풀에 져 조금 ‘파괴’됐었다. 그리고 맨체스터에 진 뒤 완전히 망가졌다. 맨체스터와의 경기에서도 아스널은 먼저 골을 넣었다. 하지만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졌다.

아스널은 3년간 단 하나의 우승 트로피도 들지 못하게 됐다. 일부에선 벵거가 너무 이상주의자라고 비난한다.

벵거는 결코 조제 모리뉴 전 첼시 감독처럼 선수들에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축구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난 그를 존경한다. 벵거는 승리지상주의를 초월하는 아름다운 축구를 한다.

모리뉴는 수천만 파운드를 쏟아 부어 ‘실용축구’를 해봤자 별 영광이 없었다. 아브람 그랜트 현 감독도 모리뉴를 따라하고 있다.

벵거에겐 변명거리가 많다. 리버풀 경기 땐 심판 판정이 미숙했다. 또 토마시 로시츠키 등 여러 명이 부상 중이었다. 이렇다 보니 대체요원이 없어 파브레가스와 아데바요르도 지쳐있었다.

벵거는 다시 열정을 되찾을 것이다. 선수들도 에너지를 충전할 것이다. 벵거가 감독으로 있는 한 아스널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기려 할 것이다.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랍 휴스 잉글랜드 칼럼니스트 ROBHU800@a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