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중의 국제학교 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엔국제학교 유치원 과정 교실에서 학생들이 바닥에 모여 앉아 각자의 경험을 친구들에게 얘기해 주고 있다. 전 세계 122개국에서 온 다국적 학생들은 이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을 배우고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유엔 외교관-직원 자녀 교육
유엔국제학교 르포
졸업땐 4, 5개 언어 자유롭게 쓰는 학생 많아
한반 친구 통해 타문화 접촉 글로벌 감각 익혀
21일 미국 뉴욕 맨해튼 동쪽 이스트리버에 바로 붙어 있는 유엔국제학교(UNIS)의 유치원과정 교실.
교실 입구에 붙어 있는 학생들의 사진과 세계지도가 눈길을 끌었다. 전체 학생 19명의 사진과 이들의 출신 국가를 연결한 지도였다.
영국, 리투아니아, 인도, 사모아…. 모두 18개국 출신 어린이들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교사는 일본인 사이토 준코 씨.
○ 한국 학생 13명 등 1564명 공부
이날 기자가 유치원 교실을 방문했을 때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을 친구들과 나누는 시간이었다. 네덜란드 출신 펨카 양이 앞에 나와 가족 여행으로 콜로라도를 갔을 때 쓴 일기를 읽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이집트인인 테오 군이 손을 번쩍 들더니 “이집트에 가서 피라미드를 보면 정말 멋있어. 너희들도 나중에 꼭 가봐”라고 말했다.
사이토 씨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을 통해 다른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등 좋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1947년 유엔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과 직원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설립된 UNIS는 ‘국제학교 중의 국제학교’로 불린다.
현재 한국 학생 13명 등 122개국 출신 1564명이 유치원 과정부터 12학년(한국의 고교 3학년) 과정까지 공부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모국어도 92개에 이른다.
○ 역사시간엔 미묘한 신경전도
이처럼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기 때문에 학교 측은 커리큘럼이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12학년의 세계사 시간. 이날 주제는 유럽에 대한 ‘트루먼 독트린’(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그리스 터키 등을 지원함으로써 소련의 팽창주의를 저지하겠다고 선언한 대외정책 노선)이었다.
교사인 토머스 시프렁 씨가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 발표 이후 터키에 소련을 겨냥해 미사일 기지를 배치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러시아 출신 학생이 대뜸 “선생님 국가(미국)에는 좋은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라고 말해 교실에 갑자기 폭소가 터졌다.
UNIS의 실무를 책임진 케네스 라이 국장은 “학생들에게 ‘가장 국제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 공부하다 보면 글로벌 시각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 뉴스가 바로 친구들의 모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고등학생쯤 되면 국제뉴스가 대화의 소재로 등장하는 일도 많다. 이런 경험 때문에 졸업 후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동문이 많다고 한다.
○ 졸업하면 ‘언어영재’?
UNIS의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언어를 배울 기회가 많다는 점.
공식 언어인 영어 외에도 제2외국어가 필수과목이다. 여기에 본인 능력에 따라서 추가로 언어를 배울 수 있어 졸업할 때면 모국어를 포함해 4, 5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학생이 많다.
브라질 출신의 12학년생 크리스티나 다 포토라 양은 “5년 전 UNIS에 왔을 때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다”며 “지금은 영어는 물론 제2외국어로 선택한 스페인어를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유엔과 공동으로 실시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때문에 지구온난화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학교와 학생들의 관심도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학교 건물 전체를 환경친화적 건물로 리노베이션하고 있다. 이를 위한 기금 조성 사업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매년 졸업생의 85%는 미국 대학에 진학한다. 지난해에도 졸업생 중 상당수가 하버드대 예일대 컬럼비아대 등 명문대에 진학했다. 15%는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의 대학에 진학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