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적소 16득점’ 승리 견인…챔스결정전 평균 9.8점 활약
SK텔레콤 T 프로농구 챔스결정전 4차전
120. 원주 동부 전창진(45) 감독과 신인 이광재(24)는 23일 경기 후 같은 숫자를 입에 올렸다. 전 감독의 ‘120점’은 이날 이광재의 플레이에 매긴 점수였고, 이광재의 ‘120’는 동부가 삼성을 꺾고 우승할 확률이었다.
양 쪽 다 틀리지 않았다. 이광재가 동부의 우승 가능성을 높이는 데 큰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이광재는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07-2008 SK텔레콤 T 프로농구 삼성과의 챔피언 결정 4차전에서 3점슛 2개를 포함한 16점을 적재적소에 꽂아넣으며 90-77 승리를 이끌었다. 홀로 팀을 조율해야 하는 표명일을 도와 어시스트 3개와 가로채기 4개도 성공시켰다. 이날 이광재의 3점슛과 자유투 성공률은 100 동부는 이와 함께 시리즈 전적 3승1패를 기록, 정규리그·챔프전 통합 우승에 단 1승만을 남겨뒀다.
삼성과 이광재의 인연은 묘하다. 아버지 이왕돈씨가 실업 농구 시절 삼성에서 활약했고, 여동생 이유진도 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에서 뛰고 있다. 그런데도 이광재는 “정규리그 때부터 삼성만 만나면 경기가 잘 풀렸다”고 했다. 친정팀을 배신(?)하고 남몰래 아들을 응원한 아버지의 정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날도 그랬다. 정규리그 51경기에서 평균 5.7점을 넣었던 이광재는 챔피언 결정전에서만 경기당 9.8득점을 해내며 삼성에 비수를 꽂았다.
믿음과 팀워크가 가장 큰 힘이었다. 이광재의 재질을 알아본 전 감독과 강동희 코치는 입단 직후 일부러 엄하게 가르쳤다. 이광재 스스로도 “대학 초년생 때 이후 가장 많이 혼나면서 운동한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 하지만 이광재는 기죽지 않고 적극적인 태도로 달려들었다.
이광재의 열린 태도에 선배들도 애정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형들에게 많이 묻고 배우면서 수비가 훨씬 좋아진 것 같다”고 털어놓는 이유다. 이날 25득점·8리바운드로 맹활약한 김주성 역시 “신인이 이렇게까지 해주니 같은 팀 선배로서 고맙다. 힘든 시기에 오히려 우리를 다독여주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좋은 후배”라고 칭찬했다.
전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작품’인 이광재가 마음 놓고 코트를 누빌 수 있도록 풀어놓았다. “간혹 자기 스피드를 믿고 무리한 공격을 하기도 한다”고 지적했지만 “발도 빠르고 슈팅 정확도도 높다. 완급조절만 잘 한다면 상대가 막기 어려운 선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광재는 올해 연세대 동기인 김태술(서울SK)과 양희종(안양KT&G)의 빛에 가렸다. 생애 한 번 뿐인 신인상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전혀 아쉽지 않다”고 했다. 김태술과 양희종은 경험할 수 없는 우승이 바로 눈앞에 왔기 때문이다. 이광재는 “신인상이 평생 한번 뿐인 건 맞지만, 챔피언 반지는 더 갖기 힘든 거라고 생각한다. 우승이 신인왕보다 더 가치있다”고 말했다.
잠실=배영은 기자 yeb@donga.com
사진=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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