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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이런 것까지]참소리축음기·에디슨박물관 손성목 관장

입력 | 2008-04-25 02:57:00


에디슨 1호 축음기 6개 중 5개 소장

희귀품 찾아 50년간 60개국 돌아다녀

축음기 5000여대 - 음반 15만장 수집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친구들에게 어미 없는 자식이라며 따돌림을 받았어. 그때 아버지가 작은 축음기를 사줬지. 그 축음기는 내 유일한 친구이자 보물이었어. 여덟 살 때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축음기를 등에 지고 남쪽으로 피란을 왔지.”

강원 강릉시에서 참소리축음기·에디슨박물관을 운영하는 손성목(65) 관장은 자신의 수집품 1호인 ‘컬럼비아 축음기 G241호’로 음악을 들려주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어린 시절 축음기와 맺은 인연으로 15세 때부터 50년 동안 세계 6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축음기 5000여 대와 음반 15만 장을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 에디슨의 발명품도 1000점이나 모았다.

“2007년 2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박물관을 방문했어. 나는 ‘에디슨의 본적은 미국이지만 에디슨의 주소는 대한민국 강릉’이라고 말했지. 에디슨이 최초로 만든 축음기, 전구, 영사기가 전부 이곳에 있거든.”

손 관장이 자랑하는 수집품은 1877년 에디슨이 만든 제1호 축음기 ‘틴 포일’. 은박 또는 주석 포일을 감은 원통을 돌리며 진동판에 대고 말을 하면 바늘이 포일에 홈을 내며 소리를 기록한다. 에디슨은 총 6개의 틴 포일을 만들었는데 손 관장이 5개를 갖고 있다.

“다른 모델이 남아 있다면 그것도 꼭 수집할 생각이야. 99개를 갖고 있어도 남이 가진 1개 마저 모으고 싶은 것이 수집가의 심보거든.”

손 관장은 6월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10일부터 15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축음기 수집가들이 모여 물품을 사고파는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는 위암으로 한 달 전 큰 수술을 받았지만 축음기를 대량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말했다. 6월 5일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 해외에 나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 것이 현재 닥친 가장 큰 장벽이다.

세계에 1대밖에 남지 않은 ‘아메리칸 포노그래프’를 수집할 때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 아메리칸 포노그래프는 동전을 넣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축음기다. 1900년 6대가 만들어졌지만 1985년에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단 1대만 남아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손 관장은 최후의 1대를 차지하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그러나 미국 시카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려다 화장실에서 무장 강도를 만나 어깨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다. 당시 후유증으로 지금도 왼쪽 어깨 안쪽에 단단한 혹이 있다.

결국 아메리칸 포노그래프를 얻는 데 성공했다. 목숨을 걸고 아르헨티나에 왔다는 손 관장의 말에 판매자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1992년 강릉시 송정동에 세운 참소리축음기박물관은 2005년 강릉 경포호 근처인 현재 위치로 이전할 때 에디슨과학박물관을 함께 지으며 규모를 확장했다. 손 관장은 현재 박물관 옆에 마련한 5000m²의 터에 어린이장난감박물관과 영화박물관도 건립할 계획이다.

“어린이장난감박물관은 1920년대에 생산된 장난감을 직접 만지며 갖고 놀도록 만들 계획이야. 고장 나면 고치면 되지. 만져보지도 못하면 무슨 박물관이야.”

손 관장은 심신이 지칠 때면 박물관의 음악감상실에서 ‘리켈라리온 피아노 오케스트리온’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다. 스스로 건반과 북, 심벌즈를 두드리는 오케스트리온을 보고 있으면 축음기에 대한 ‘꿈’과 ‘열정’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강릉=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