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삼성 안준호 감독은 숱한 명언들로 유명하다.
이번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치악산 호랑이’(동부 전창진 감독)를 잡겠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전 감독을 자극하기는 했지만 팬들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해 “역시 안준호”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안 감독은 사실 달변과는 거리가 멀다.
느리고 더듬거리는 말투인 눌변에 가깝다. 게다가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한 탓인지 얼굴이 굳는다. 2년 전 1000만 원을 주고 화술 지도를 받았다는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명언들은 나오지만 문제는 아직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
“무슨 군대 지휘관 같다. 연설하는 것도 아니고 저런 무표정한 얼굴로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ㅋㅋ.” 한 삼성 팬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전창진 감독은 “마치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것 같더라”면서 안 감독의 약점을 아프게 꼬집었다.
삼성 선수들도 답답해하는 것 같다. 챔피언 결정 2차전 막판에는 다급해진 이상민이 빅터 토마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이를 통역이 전해주는 과정이 TV를 통해 생중계되기도 했다. “선수들과 수평적으로 의견 교환을 한다”는 안 감독이지만 머쓱한 상황이었다.
안 감독은 ‘높이’의 팀이던 삼성을 ‘스피드’가 강한 조직으로 바꿔 올 시즌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자신을 포장하고 홍보하기에는 미흡한 면이 있다. 달변의 시대에 그가 힘든 까닭이다.
그는 “팬들에게 재미를 주려고 준비한 사자성어가 마치 상대 감독에게 날을 세운 것 같이 비쳐 괴롭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 감독은 챔피언 결정 1차전에서 사자성어를 밝힌 이후 말을 아끼고 있다. 물론 경기 결과(1승 3패)가 나빠서일 수도 있다. 그래도 침묵하는 안 감독보다는 서툴지만 자신 있게 소신을 펴는 모습이 그답다. 안 감독의 자신감 있는 한마디가 침체된 팀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다. 챔피언 결정 5차전이 25일 열린다.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듯한 안 감독의 일성을 듣고 싶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