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풀며/리처드 도킨스 지음·최재천 김산하 옮김/488쪽·1만6000원·바다출판사
리처드 도킨스의 책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제목만 봐선 언뜻 감이 오지 않는다. ‘이기적 유전자’ ‘확장된 표현형’ ‘눈먼 시계공’….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만들어진 신’ 정도가 그나마 알아들을 만하다.
또 하나 공통점, 내용이 ‘명쾌하다’. 세계 최고의 지성이지만 어렵지 않게 글을 풀어낸다. 자기 장기인 진화생물학부터 천체물리학, 종교까지 온갖 분야에 메스를 대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한다. 거침없고, 신랄하고, 후련하다.
‘무지개를 풀며’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은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시구에서 따왔다. 키츠는 아이작 뉴턴이 프리즘으로 빛을 분광해 내는 바람에 무지개를 풀어헤쳐 모든 시정(詩情)을 말살했다고 분노했다. 과학이 상상력과 인문학을 도태시킨다는 주장이다.
“(이 책의) 목적은 이와 비슷한 관점에 유혹당하는 이들을 정반대의 결론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과학은 위대한 시적 영감의 원천이다. …만약 키츠가 ‘낭만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시인이라면 분명 그는 아인슈타인, 허블 그리고 호킹의 우주를 보며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저자의 풀어헤치기는 전방위를 넘나든다. 미국의 하향 평준화된 과학교육, 환상이나 초능력 등에 대한 무지,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습관적 오해까지. 국가의 DNA 데이터베이스 수집이나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오용과 남용의 위험을 일일이 지적하는 모습은 역시 도킨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게다가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책에 비교해 터치가 가벼우면서도 훨씬 엄격한 잣대를 내민다. 동료 과학자들에게도 여지가 없다. 세계적인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심지어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칼 세이건의 아내였던 린 마굴리스까지도 비판의 도마에 올린다. 다시 한 번 ‘도킨스답다’.
하지만 진짜 도킨스다움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 모든 논쟁을 열린 마음으로 접근한다. 그걸 저자는 ‘과학의 본분’이라 부른다.
“옥스퍼드대 학부 시절 나는 매우 중요한 경험을 얻었다. 미국에서 온 연사가 우리 동물학과에서 매우 존경받는 원로 교수가 제창하고 우리가 근간으로 삼았던 어떤 특수 이론을 부정하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다. 강의가 끝나자 교수는 강단으로 걸어가 그 미국인과 악수하며 심금을 울리는 어조로 말했다. ‘정말 고맙네. 15년 동안이나 잘못 알고 있었지 뭔가.’ 우리는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쳤다.”
과학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금 진리라 믿는다고 이후 버려지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도킨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이 과학이나 진리의 유효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렵지만 그걸 찾아나가는 과정. 그 경이로움은 여전히 아름답다. 원제 ‘Unweaving the rainbow’(1998).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