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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 보르도… ‘英-佛 백년전쟁 불씨

입력 | 2008-04-26 08:47:00


프랑스 와인, 그 중에서도 보르도 와인은 대부분의 사람이 다 안다. 와인을 마시지 않는 사람조차 와인의 나라는 프랑스, 프랑스의 좋은 와인은 보르도에서 난다고 알고 있다. 도대체 보르도 와인은 어떻게 유명해진 걸까. 다섯 번째 과외 날, 김은정이 먼저 궁금증을 건드렸다.

“100년 전쟁이라고 알지? 그런데 그 이유에 보르도 와인이 있었다는 거 알아?”

“무슨 소리야. 그건 땅 때문에 벌어진 거 아니었어?”

“12세기 유럽에는 윌리엄 10세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는 비록 공작 신분이었지만 그가 소유한 아키텐 공국은 프랑스 왕국 영토의 세배가 넘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지. 그에게는 엘레아노르라는 딸이 있는데 15세 때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와 정략결혼을 시켰다가 이혼해. 그녀는 이후 영국 국왕 헨리 2세와 결혼하지.”

“프랑스 왕비에 이어 영국 왕비가 된 거네.”

“그렇지. 그런데 여기서 바로 문제가 발생해. 당시 결혼 관습은 신부의 재산을 모두 결혼지참금으로 가져가는 건데, 이로 인해 엘레아노르의 전 재산은 영국으로 넘어갔고, 아키텐 공국에 속한 보르도도 자연스럽게 영국 소유가 됐지.”

“아하! 그래서 이 땅을 찾으려고 100년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이구나.”

“그렇지. 그런데 재미있게도 당시 영국 사람들은 새 왕비를 엄청 반겼어. 나중에 벌어질 참극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야. 그 이유가 뭔지 알아. 바로 마실 물 때문이야. 영국은 심각한 지하수 오염으로 식수가 늘 부족했고, 보르도,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와인을 수입해 물 대신 마셨는데, 보르도가 영국령이 되니까 자기네 와인처럼 마실 수 있어서였지. 보르도 와인은 당연히 관세가 폐지되고, 가격이 싸지면서, 소비가 늘어났겠지. 보르도 와인 수출은 런던항 와인 하역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고 말이야. ”

신기했다.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와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런데 보르도 와인에 밀린 스페인과 포르투갈 와인은 어떻게 됐을까. 김은정의 설명을 듣고 나니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보통 와인으로는 경쟁이 안 되자 두 나라는 알코올 도수를 높인 주정강화 와인을 만들었고, 이게 바로 식전주와 식후주로 마시는 셰리와 포트 와인이란다. 한 여인의 결혼이 와인 시장의 판도를 이렇게 바꿔놓을 줄 누가 알았을까. 하긴 이런 일이 하나씩 쌓여 만들어진 게 역사 아니던가.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KISA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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