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 장관급 대우에 온갖 특전을 누리는 현역 의원의 호사(豪奢)와 끈 떨어진 전직 의원의 신세를 비교해서 정치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국회의원 ‘현직과 전직’을 다 경험했다. 그가 한나라당 소속 현역 의원 가운데 18대 총선 낙천·낙선자들을 지난 금요일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베푼 것도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느끼게 한다. “전화를 하려 했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미루게 됐다”는 말에 상정(常情)이 묻어 있다.
▷그날 만찬에서 한 원로급 의원은 “21세기는 환경의 시대이고 주제어 중 하나가 리사이클링(재활용)이다”는 말로 낙천·낙선자들에 대한 인사 배려를 주문했다. 다른 중진 의원은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혀진다)”라며 “자주 불러 달라”고 했다. 농담조였다지만 낙천에도 불구하고 탈당하지 않고 선거 지원활동을 했으니 대통령이 ‘인사 부담’을 느꼈을 법하다.
▷역대 정권의 실패는 ‘인사(人事)가 만사’임을 체득(體得)하지 못해 정치식객(食客)들에게 중요한 자리를 전리품처럼 나눠준 것과 무관치 않다. 사실상 청와대가 공기업 요직에 식객들을 줄줄이 내려 보내곤 했다. 군부정권에선 군화 출신, 김영삼 정권에선 민주산악회 등산화 출신, 김대중 정권에선 운동화(친DJ 운동권) 출신이 ‘낙하산’을 탔다. 대통령의 측근인 전직 의원에게 공기업을 맡겨 정치자금을 조달했다는 설도 있었다. 노무현 정권에선 ‘386’과 좌파 출신이 그 자리를 채웠다.
▷정권이 바뀐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임기제를 방패로 삼아 버티는 관변 단체와 기관의 장(長)과 핵심 간부들은 대부분 노무현의 정치식객들이다. 이 대통령은 25일 공기업 인사와 관련해 “민간 최고경영자 중에서 경쟁력 있는 인물을 뽑아서라도 (전문가 위주로) 가도록 해야 한다”며 낙하산 인사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물론 경륜이 있는 전직 의원도 있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대선 캠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정치식객일 뿐인 사람을 걸러내지 않으면 공기업 개혁은 물 건너간다고 봐야 한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