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원서동 가갤러리(02-744-8736)에서 열리는 김을의 ‘눈물’전에서는 눈물을 주제로 한 드로잉, 캔버스, 설치작업 등을 만날 수 있다. 하늘색 캔버스에 진줏빛 눈물이 알알이 맺혀 있는 ‘눈물’(172×122cm·2008년). 사진 제공 가갤러리
남자의 가슴에 그토록 많은 눈물이 고여 있는 줄
여자의 마음에 그토록 깊은 상처가 쌓여 있는 줄
#마음 저릿하게
남자의 가슴에 그토록 많은 눈물이 고여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눈물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나’ ‘바람 속에서 뒹구는 눈물방울들’ ‘공전하는 눈물’…. 의미심장한 제목의 드로잉 작품부터 예사롭지 않다. 여기에 영롱한 진주눈물 같은 오브제를 붙인 캔버스, 인간의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을 표현한 일곱 개의 순금 눈물, 손수레에 잔뜩 눈물을 싣고 가는 인형까지. 세상살이의 모든 굴곡을 ‘눈물’ 하나로 환치시킨 작품들을 보면 가슴 찡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유쾌하고 후련하다. 서러운 눈물만이 아닌 빛나는 눈물, 희망의 눈물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5월 15일까지 김을(54)의 ‘눈물’전이 열리는 서울 창덕궁 옆 종로구 원서동의 가갤러리에서는 다양한 눈물의 변주곡을 감상할 수 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나 자신을 자유롭게 내보이고 싶어서’ 2002년부터 시작한 드로잉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다. 그간의 드로잉 작업을 ‘눈물’로 귀결시킨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인생의 본질이 눈물 같기도 하다. 크게 보면 눈물이 우주의 원리라고 생각한다. 슬픔이 없으면 지구가 돌아가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답했다.
회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홀대하는 드로잉에 집중해 온 작가가 걸어온 비주류의 삶. 요즘 그에겐 눈물이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굽이굽이 쓰라린 인생살이. 눈물이란 필터로 걸러내 보니 슬픔이란 것이 되레 희망으로 생각되더란다.
‘눈물은 감정의 늪이다. 유약한 인간들만이 제가 만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법이다.’ 천운영의 단편 ‘그녀의 눈물사용법’에서 주인공은 위악적으로 말하지만, 말라버린 눈물샘이야말로 더 두려운 늪임을 알게 된다. 목 놓아 울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사이보그 아닌 사람이란 존재증명 아닌가. 생을 잘 견뎌내고 있다는 훈장 아닌가.
‘아!/이렇게 웅장한 산도/이렇게 큰 눈물샘을 안고 있다는 것을/이제야 알았습니다.’(정채봉의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백두산 천지에서’)
#가슴 먹먹하게
여자의 마음에 그토록 깊은 상처가 쌓여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입에 식칼 물고 머리엔 꽃을 꽂고 아슬아슬 서있거나, 피눈물을 흘리고, 맨발로 깨진 병 위에 올라선 여자들. 그들이 느끼는 격렬한 통증이 살갗으로 생생하게 와 닿는다. 그중 ‘관계’라는 오브제 작품이 시선을 붙든다. 심장에 대못이 박혀 있거나 구멍이 뻥 뚫린 여자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받은 상처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 준다. ‘벌어진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두 손으로 받으며/나는 망연히 생각한다/언젠가 나도 너를 들이박은 적 있었지/그때 벌어진 네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어떤 영혼의 갈증을 적셔주었던가’(남진우의 ‘일각수’)
5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UNC갤러리에서 열리는 송진화(46)의 ‘Absolute Beautiful’전. 미대 졸업 후 생활에 파묻혀 한동안 작품에서 멀어졌다. 자신을 찾고 싶었다. 40대 들어 출발점에 다시 섰다. 버려진 나무토막을 깎아 숨결을 불어넣는 늦깎이 작가의 작업. 그 속에서 따스한 손맛이 우러난다. 상처받은 영혼의 일상을 표현한 작품은 오방색으로 채색된 데다 유머가 스며 있어 칙칙하지 않다. 버거운 나날에 등이 휠지라도 안간힘을 다해 전진하는 삶의 용사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음을 웅변하는 것 같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인터뷰’에서 상처에 관한 흥미로운 해석과 만났다. 기자가 여배우에게 묻는다. “남자를 매력 있게 만드는 것은?” 여배우는 “상처”라고 대답한다. 왜냐고 묻자 답이 돌아온다. “대부분의 여자들도 (상처를) 갖고 있으니까.” 그렇게 보면 상처는 매혹적 공감대이기도 한 셈이다.
미술은 치유의 힘을 갖는다. 두 전시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작업이면서 보는 이의 마음도 어루만져 준다. 상처와 눈물을 인생살이의 흠집이 아닌 무늬로 보라고 권한다. 삶은 가혹한 것이라고 증언하면서도 징징거리거나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는다. 그래서 울림이 크다.
지는 꽃들 따라 하루하루 봄날은 흐르고 상처딱지 겹겹 마음마다 뭔가 움트고 있다. 그건 바로 새살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