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 나를 미치게 만들지 마 그러지 않으면 후회할 거야/로버트 A. F. 서먼 지음/민음in
《“짜증과 약 오름, 불만 따위가 일순간에 저항할 수 없는 충동으로 폭발하여 그 감정의 원천으로 보이는 것에 해를 입히는 방식으로 대응할 때 화가 일어난다. 그렇게 화를 일으킨 사람은 더 이상 정신적, 언어적, 혹은 육체적 행동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화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본의 아니게 화의 도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를 화나게 한 그, 사랑으로 포용하라
화는 어디서 오는가. ‘화, 나를 미치게…’에 따르면 화는 “자아를 구체화하고 자기 자아의 절대화된 감각을 투사하여 타인을 대상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고통을 가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쉽게 말해서 화는 자신이 원치 않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상대방과의 소통은 무시한 채 오로지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자기 뜻대로 결론짓기 때문에 생기는 반응이다. 이는 거꾸로 생각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나 유발하는 사람 모두 ‘무의식적인 충동’의 조종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화를 내지 않는 건 불가능할까. 이미 일어난 화를 누그러뜨리기란 쉽지 않다. 미리 “화가 발화점에 닿지 않게” 해야 한다. ‘원치 않는 상황이 주는 불안이나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좌절’이 화의 주요 원인이므로 미리 상황을 통제하고 내면을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
저자가 인간 심리 가운데 화에 주목한 것은 저자의 배경에 기인한다. 30년 가까이 달라이 라마 밑에서 승려로서 티베트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서구 사회에 불교를 전파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7년엔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뽑히기도 했다.
저자가 보기에 서구 문명은 곳곳에 화가 내재돼 있다. 종교나 역사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는 자비로운 존재이면서도 아담과 이브, 바벨탑, 소돔과 고모라 등에서 인간에게 화를 내는 존재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화를 “정당하지 않게 가해진 경멸에 대해 눈에 보이게 복수하고 싶어 하는 충동”이라며 유익한 화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현대 서구 사회는 갈수록 화가 팽배하는 문화다. 서구 민주주의는 비이성적인 제국주의와 결합해 구성원들에게 너무 일찍부터 화를 가르친다. 이에 비해 동양은 개인은 화와 탐욕으로부터의 자유를, 사회는 비폭력과 평화를 추구하는 문화다. 동양 문화가 화를 다스릴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은 오랜 전통 속에서 “초월적인 인내와 관용”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에서 고통을 준 상대에게 즉각 화로 반응하지 않고 해를 끼친 사람을 사랑과 용서, 나아가 존중으로 끌어안는 길을 제시한다. 달라이 라마는 그 단적인 예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마오쩌둥(毛澤東)을 꼽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