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충남 당진군의 A공장 신축 용지(약 16만 m²).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인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원들은 고려시대 고분(석곽묘) 발굴 조사에 여념이 없었다. ‘공사면적이 3만 m²(약 1만 평) 이상일 경우 공사에 앞서 문화재 지표 조사와 발굴 조사를 해야 한다’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발굴이 진행 중이었다.
이날 오전부터 발굴 현장에 와 있던 회사 대표와 직원들은 연구원들에게 “조사가 너무 더디다”며 “발굴을 서둘러 달라”고 독촉했다. 이들은 “문화재 조사가 늦어져 공장 착공 날짜를 제대로 잡지 못한 탓에 외국 회사와 맺은 납품 계약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온 뒤 일이 터졌다. 회사 측이 현장에 있던 굴착기로 석곽묘 유적을 밀어버린 것이다. 귀중한 문화유산인 고려 석곽묘의 정확한 시기나 성격, 구조 등이 파악되기도 전에 송두리째 훼손돼 버렸다. 황급히 달려 나와 이 사건을 촬영하던 연구원들은 사진기도 빼앗겼다.
문화재청은 이날 오후 긴급 현장 조사에 나서 다섯 곳의 석곽묘가 완전히 훼손됐음을 확인하고 이 회사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진상 조사와 고발 등 후속 조치를 서두르자 청을 방문해 사과했다.
그러나 이미 뒤늦은 일이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그 자리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철폐하는 마당에 (공장 신규 설립에 방해가 되는) 문화재보호법도 없애야 한다’는 말도 나오더라”며 서글퍼했다.
이번 사건은 문화재가 지역 개발에 걸림돌이 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런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문화재 조사 기간을 현 140여 일에서 40여 일로 단축하고 문화재 발굴 인력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개선 방안을 최근 발표했다.
기업이나 지역의 민원 사항을 외면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화 유적을 훼손하는 일은 어떤 이유에서도 용납되기 어렵다. 공장은 다시 지을 수 있지만 우리 선조의 숨결이 깃든 문화 유적은 한번 훼손되면 복원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오르려면 경제나 개발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문화재를 하찮은 걸림돌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한 연구원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윤완준 문화부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