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투수를 메이저리그에서는 ‘클로저(Closer)’라고 부른다. 게임을 마무리짓는다는 의미다. 마무리 투수는 구위도 좋아야 하지만 게임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멘탈리티를 매우 중요하게 고려한다. 상위권 팀은 항상 튼튼한 마무리를 확보하고 있다. 약팀은 예외없이 뒷문도 약하다. 뒷문을 확실하게 잠글 수 있어야 하는 마무리가 약하면 팀은 불안하다. 세이브 기회를 날려 버리는 블론세이브(Blown save)가 나올 경우 팀은 침체에 빠진다. 경기가 중반에 뒤집어지는 것과 9회 마무리의 블론세이브로 역전되는 경우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마무리 투수의 블론세이브로 게임이 역전되면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개막 1개월 가까이 된 메이저리그는 초반에 베테랑 마무리 투수들의 잇단 방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콜로라도 로키스는 벌써 마무리를 교체했다.초반에 나타난 마무리 투수들의 방화 실태를 살펴본다.
○노 모어 게임오버
밀워키 브루어스는 지난 오프시즌 ‘게임오버’의 대명사 에릭 가니에(32)를 연봉 1000만달러를 주고 영입했다. 가니에는 지난 해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돼 셋업맨으로 활동했을 때부터 부진을 면치 못했다. 더구나 지난 해 12월 메이저리그 약물조사위원회의 ‘미첼 리포트’가 발표될 때 가니에는 약물복용자로 명단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 44세이브를 작성한 프란시스코 코데로(신시내티 레즈)를 프리에이전트 시장에서 빼앗긴 밀워키는 가니에에 큰 베팅을 했다. 전문가들은 가니에가 보스턴에서 셋업맨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이를 파악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현재 가장 많은 4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 중이다. 29일 현재 7세이브를 기록하고 있지만 평균 자책점이 6.75다. 시즌 초반 밀워키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가니에의 잇단 블론세이브로 망쳤다.
○추락하는 세이브 왕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방수 트레버 호프먼(41)은 통산 528세이브를 거두고 있다. 이 부문 역대 1위다. 호프먼이 마운드에 등장할 때 나오는 테마음악 AC/DC의 ‘Hell's Bell’은 상대 팀에게 그야말로 지옥의 종소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지옥의 종소리가 아니라 친근한 멜로디처럼 들리고 있다.
현재 9경기에 등판해 4세이브 2패 2블론세이브 평균자책점 7.27이다. 호프먼이 등판하면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다. 특히 1점차 승부는 눈을 감고 봐야 할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WHIP(이닝당 안타, 볼넷 허용)이 1.62면 마무리 투수로는 부적격이다. 뉴욕 양키스의 특급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는 WHIP이 0.40이다. 하지만 그동안 쌓은 공적과 베테랑인 터라 버드 블랙 감독은 호프먼을 쉽게 교체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팀은 속앓이를 하면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최하위로 처졌다.
샌디에이고는 작년 투수3관왕을 차지한 에이스 제이크 피비가 건재해 애리조나와 서부지구 우승을 놓고 경쟁을 벌일 후보로 꼽혔다. 아직 시즌 초반이라 섣부른 예상은 금물이지만 샌디에이고는 뒷문이 너무 불안하다.
○임무교대
지난 해 6월 30일 콜로라도 로키스 클린트 허들 감독은 마무리 투수를 교체했다. 왼쪽 사이드암스로 브라이언 푸엔테스(33)에서 파나마 출신의 젊은 우완 매뉴엘 코르파스(26)로 바꿨다. 푸엔테스가 4경기연속 블론세이브를 기록해 소방수에서 방화범이 돼 버린 것. 빠른 볼을 갖고 있는 코르파스는 7월8일 경기부터 19세이브 1블론세이브로 완벽하게 뒷문을 걸어 잠갔다. 코르파스의 역투로 콜로라도는 사상 첫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상황이 바뀌어 올해 4월24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코르파스는 9회말 5-4의 스코어를 지키지 못하고 2경기 연속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최근 4경기에서 3블론세이브였다. 허들 감독은 다시 푸엔테스를 마무리로 올리고 코르파스를 셋업맨으로 강등시켰다.
구단은 지난 시즌 코르파스의 완벽한 마무리에 고무돼 4년 연봉 2200만달러에 장기계약을 맺기도 했다.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 챔피언은 코르파스의 방화와 함께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LA 다저스도 불안
다저스 마무리는 일본인 사이토 다카시(38)다. 사이토는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저비용 고효율’ 투수다. 지난 해 연봉이 100만달러였다. 그러나 그가 거둔 성적은 연봉 1000만달러 선수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았다. 2승1패 39세이브 평균자책점이 1.40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5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 가운데 평균자책점이 가장 뛰어났다. 다저스는 올해 스프링트레이닝이 시작되기 전 연봉 200만달러에 사이토와 다시 1년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현재 2세이브에 블론세이브도 2개다. 지난해보다 변화구의 각이 예리하지 않고 특유의 코너워크 제구가 잘 안되고 있다. 38살의 나이 탓인지 초반에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공교롭게도 2개의 블론세이브가 일본인 동료 구로다 히로키의 승리를 날려버린 게임이다. 사이토는 다저스 구단에 구로다를 영입하라고 적극 추천한 인물이어서 더 아이러니컬하다.
LA=문상열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