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들의 성서'로 불리는 '미슐랭 가이드' 때문에 일본 전통 요리의 본산인 교토(京都)가 들썩이고 있다.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 및 안내서인 미슐랭 가이드가 올해 2월부터 교토 요리점에 대한 암행 심사에 들어갔다는 정보가 나돌면서 자존심에 살고 죽는 교토의 식당 주인들 사이에서 찬반 논쟁이 일고 있다.
교토신문에 따르면 일부 식당들은 "외국에서 손님이 몰려올지도 모른다"고 반기는 반면, "외국인들이 교토의 맛을 어떻게 아느냐"며 심사를 거부하는 식당들도 줄을 잇고 있다.
미슐랭가이드의 심사에 응한 식당에는 조사원이 방문해 사진 촬영 승낙서 서명까지 받아 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음식점 주인은 "교(京·교토를 의미)의 요리는 계절의 미묘한 추이를 표현하거나, 장식과 그릇도 포함해 마음으로 대접하는 것"이라며 "일본인도 이곳의 풍토나 문화를 숙지하고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데 프랑스인들이 평가할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교토의 요식업계에서는 미슐랭가이드의 출현에 대해 '구로부네(黑船)의 재래'라는 표현조차 나돈다. 에도(江戶) 막부 말기에 개항을 강요하며 쳐들어왔던 페리 제독의 미 함대에 빗댄 표현이다.
정작 미슐랭가이드 측은 교토판을 낼지 여부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장 뤽 나레 미슐랭가이드 편집장은 지난달 25일 "도쿄에 이은 아시아의 주요 도시판을 매년 1종씩 추가해나갈 계획이며 5월에 두번째 도시명을 발표하겠다"고만 밝혔다.
한편 '미슐랭 가이드'가 지난해 11월 '아시아 1호'로 도쿄(東京)판을 발간한 여파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미슐랭가이드는 당시 도쿄의 식당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별을 달아줬다. 150개 식당에 모두 191개의 별이 붙었고, 이 중 8곳이 최고 평점인 별 3개를 받았다.
미슐랭가이드가 도쿄를 '세계 최고의 미식도시'로 추켜세운 덕분인지 도쿄판은 현재까지 27만부가 팔려나갔다. 22개국에서 출판되는 미슐랭가이드의 지난해 세계 판매부수도 100만부를 넘어섰다.
한편에서는 미슐랭가이드가 해외 판매 확대를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도쿄에 후한 점수를 남발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업계 내에서는 별을 받은 식당에 대한 폄하도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개정판에서는 이름을 빼달라고 하는 식당도 나타나고, 별 하나를 받았던 니시아자부(西麻布)의 프랑스식당 '더 조지아클럽'은 3월초 아예 문을 닫았다. 점주는 폐업 사유로 '개인사정'을 내세우고 있지만 일부 주간지 등은 그가 "(따기 힘든 별을 이 식당에 준) 평가가 불공정하다" 고 주장하는 괴전화 등에 시달려왔다고 보도했다.
한편 일본 국제관광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은 834만9000명으로 전년대비 약 100만명(13.8%)이 증가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프랑스인 관광객이 전년보다 16.9% 늘자 "미슐랭가이드 덕분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도쿄=서영아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