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철학자로 불리는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 호르헤 발다노는 ‘축구는 주관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지는 경기’라고 했는데 그 감정이 분출하는 최정점에는 늘 라이벌간의 숨막히는 접전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라이벌전 중에서 경기의 중요도와 상관없이 팬과 클럽 모두에게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바로 지역 라이벌전을 뜻하는 ‘더비 경기’다. 과열된 더비는 종종 폭력사태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최근의 대표적 사례가 2007년 2월에 있었던 팔레모, 카타니아간의 이탈리아 세리아 경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시칠리아 더비에서 팔레모가 2-1로 승리하자 양 서포터들간의 대규모 충돌이 있었고, 그 와중에 경찰 한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시칠리아 더비와 비견되는 더비가 잉글랜드에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머시 강이 흐르는 머시 사이드 지역을 연고로 하는 리버풀과 에버턴이다.
리버퍼들리언 vs 에버토니언
두팀 모두 열정적 서포터스로 정평
치열한 경쟁의식 툭하면 상대 자극
최근엔 서로 “살인자야!” 외치기도
1일 현재 EPL 4위와 5위를 각각 달리고 있는 양 클럽은 북 런던을 연고로 하는 아스널과 토트넘, 맨체스터에 기반을 둔 맨유와 맨체스터 시티와 함께 EPL을 대표하는 더비로써 가장 열정적인 서포터로 정평이 나 있는 리버퍼들리언(리버풀인을 지칭)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클럽들이다. 리버퍼들리언들은 영국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그리고 머시 사이드라는 5개의 나라가 있다고 할 만큼 자기 정체성이 강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는데,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들 스스로 리버풀을 독특한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개성이 강한 지역에 각각 앤필드와 구디슨 파크를 홈 구장으로 사용하는 리버풀과 에버턴은 19세기 말에 창단되자마자 각자 리그 상위권을 휩쓰는 호각지세를 형성했다. 특히 1977부터 1990년 사이에 양 클럽 합산 11번의 리그 우승, 3번의 FA컵 우승, 4번의 리그 컵 우승, 4번의 유러피언컵 우승, 1번의 컵위너스컵 우승을 하는 리버풀 지역 클럽 전성시대를 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성공 뒤에는 창단 이래 강한 라이벌 의식이 자리잡아 오고 있었다. 전 리버풀 매니저 빌 생클리는 에버턴과의 라이벌 관계를 의식해 “머시 사이드에는 알다시피 두 개의 위대한 팀이 있습니다. 하나는 리버풀이고 다른 하나는 리버풀 2군입니다” 라며 에버턴이라는 존재를 애써 무시하려 했다. 현 에버턴 구단의 회장인 빌 캔라이트는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에버토니언(에버턴 서포터를 지칭)이었다며 리버퍼들리언을 리버풀 서포터로 국한시키며 차별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제 리버풀과 에버턴은 피치 안이든 밖이든 거의 모든 것에서 사사건건 대결하는 양상이다. 각각 붉고 푸른 유니폼 색깔만큼이나 멀어진 두 팀의 간극은 자리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앤필드 구장 박물관의 아리언 킬른은 리버풀 팬으로 “구디슨 파크에 가면 위협을 느낀다”며 심지어 경찰이 지금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체포하겠다고 해 가겠다고 하면 구장을 빠져 나갈 때까지 신변안전을 위해 호위를 해주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그 심각성을 설명한다.
최근에는 매 더비 경기 때 상대에게 “살인자야” 라고 외치는 상황까지 와있다. 또한 구디슨 파크의 외벽에 검은 글씨로 써있는 낙서 중에는 ‘루니는 죽는다’ 라는 다소 섬뜩한 문구가 있는데, 이는 에버턴 스트라이커에서 라이벌 맨유로 이적한 배신자에 대한 에버턴 팬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하겠다.
에버턴 서포터 입장에서는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리버풀에 머시 사이드 대표성에서 밀리는 에버턴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슬로건은 ‘에버턴은 우리 대중들의 클럽이다’는 것이다. 이는 리버풀은 미국인 사업가 조지 질레트와 톰 힉스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2002년 에버턴 매니저로 부임한 데이비드 모예스가 거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버턴 서포터라며 자신은 리버풀 지역사람들의 클럽인 빅 클럽에 부임하게 되는 것을 꿈꿔왔다고 한데서 유래했다.
이에 대해 리버풀 팬들은 에버턴이 영국 내 최대 슈퍼마켓 테스코 등의 지원을 받아 새 홈 구장으로 리버풀 외곽 커비라는 지역을 고려 중이라는 2006년 발표를 기화로 에버턴은 이제 대중들의 슈퍼마켓이 되었다고 비꼬았다.
축구도시 리버풀, 갈등을 넘어
감독·회장까지 티격태격 하지만
서포터 소년 사망땐 한마음 애도
더비열전으로 축구 대표도시 성장
리버풀 서포터들은 리버풀에는 리버풀 만의 방식이 있다며, 전 리버풀 감독인 생클리 때부터 명확하고 굉장히 효과적인 시스템이 전수되어 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리버풀 만의 방식은 강한 훈련을 통해 볼을 통제하고 패스한다는 두 원칙에 근거한다. 이러한 리버풀 방식은 공동체적 책임감과 피치에서의 열정적 플레이를 바탕으로 리버풀 성공시대를 열었는데, 이때 에버턴은 암흑기와 같은 것이었다. 리버풀 팬들은 또한 에버턴의 대중성 주장에 맞서 ‘하나의 도시, ‘나의 클럽, 하나의 이름 리버풀’이라는 슬로건으로 리버풀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있다. 리버풀 감독인 베니테즈와 에버턴 감독인 모예스도 이런 치열한 더비 구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베니테즈는 에버턴을 작은 클럽이라고 칭하며 리버풀이 상대적으로 더 큰 클럽임을 은근히 과시하기도 했다.
“나는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왜냐하면 한 팀은 이기려고 하는데 다른 한 팀은 지지 않으려고만 합니다. 에버턴은 볼 주위에 8-9명의 선수를 놓고, 수비위주의 경기를 하는데 이는 작은 클럽들이 잘 쓰는 전술입니다.”
이런 베니테즈의 도발은 에버턴 팬들은 물론이고 감독인 모예스도 분개하게 만들었다. 평소 외교적 언사를 잘 쓰기로 유명한 모예스는 이 경우에는 날 선 공방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에버턴은 잉글랜드에서 빅 클럽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현 시점에서 리버풀에 비해 다소 적기는 하지만 만일 베니테즈가 에버턴 감독이라면 그도 나와 비슷한 전술을 썼을 겁니다. 그가 같은 매니저로써 겸손함을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라고 직설적으로 베니테즈를 비판했다.
에버턴 구단 회장인 케이스 위니스도 스페인 출신 리버풀 감독의 말에 발끈했는데, 케이스는 “그 스패니시처럼 에버턴이 어떤 측면에서라도 작은 클럽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 해도 그런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머시 사이드에 항상 갈등 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리버풀과 에버턴으로 양분되어 갈등하던 도시가 축구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2007년 8월 앤필드에서 있었던 챔피언스리그였다. 이날 앤필드에는 총에 맞아 숨진 11살 에버턴 서포터 소년의 명복을 비는 시간이 있었고, 리버풀 선수들의 팔에는 소년을 기리는 검은색 띠가 묶여 있었다. 사실 이 두 클럽간의 감정싸움 이면에는 축구를 사랑하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열정이 있었고, 이런 열광적인 지지 속에 양 클럽은 열악한 도시 환경에도 불구하고 EPL 상위 명문클럽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리버풀 로고 상단에도 등장하는 ‘너는 결코 홀로 걸어가지 않을 거다’는 느리고 감정에 북 받힌 어조의 응원가는 리버풀 서포터의 지지와 도전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다른 어느 클럽에서도 듣기 어려운 이런 장엄하고 감상적인 응원가를 만든 정신이 깃든 곳이 바로 리버풀 지역이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항상 함께 할 든든한 서포터가 있기에 리버풀과 에버턴은 오늘도 그라운드 안에서든 밖에서든 서로에게 뒤지지 않을 열정과 헌신으로 피치에서 최선을 다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축구도시 리버풀이라는 명성은 바로 이런 더비의식이 원동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요크(영국)=전홍석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