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칸픽과 픽칸몰’ 그림=허유미, 주니어 김영사
어느 날 소년은 우연히 우물 속을 들여다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우물 속에 자신과 똑같은 반쪽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쏙 빼닮은 표정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흉내 내는 반쪽이 존재한다는 것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소년은 우물 속을 보던 시선을 바깥쪽으로 돌려보았습니다. 그러자 우물 속의 자신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우물 밖의 자신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우물 속으로 시선을 떨어뜨리면 밖에 있던 자신은 순식간에 우물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소년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물 밖에 있는 자신이나 우물 속에 비치는 자신 중에서 어느 쪽이 진정한 자신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지금까지 자기 자신이라고 믿어온 모든 증거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허상만 존재한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자부심도 사라졌고 허망한 무력감만 가슴에 가득했습니다. 그대로 방치했다간 자신의 정체성조차도 의심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년은 우물 밖의 자신과 우물 속의 자신이 서로 만나 담판을 짓고 그 반쪽을 지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년은 두레박을 깊은 우물 속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수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두레박에 손쉽게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레박을 우물 밖으로 끌어올려 대야에 담아낼라치면 자신의 얼굴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방을 두리번거려도 건져 올렸던 자신은 어디론가 줄행랑을 놓고 말았습니다.
소년은 혹시나 해서 다시 우물 속을 들여다봅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반쪽의 자신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화가 났고 오기가 났습니다. 네가 이기느냐 내가 이기느냐 해보자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악물었고, 기어코 해내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집니다. 누구의 조언이나 협조 따위는 필요 없었습니다.
소년은 하루 종일 혼자서 두레박에 자신을 담아 퍼 올리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튿날도 소년은 우물로 달려와서 자기 자신을 퍼 올립니다. 신념에 가득 찼던 소년은 언젠가는 끝장이 날 것이란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1년 365일을 소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피맺힌 노력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소년은 애초에 바랐던 것처럼 자신의 다른 반쪽을 지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일에 성공했을 때, 소년의 주변에 살면서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마을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른 고장으로 이주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마을에 하나뿐이던 우물이 소년으로 말미암아 바닥을 드러내며 메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김주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