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의 17대 국회 처리가 미국산 쇠고기 협상 문제로 사실상 물 건너가고 말았다. 총선을 치르고 난 ‘잔여 임기 국회’라 처음부터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나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까지 ‘선(先) 쇠고기 재협상, 후(後) FTA 처리’를 주장하며 ‘쇠고기 정국’을 조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인터넷 여론이 커지고 2, 3일 촛불시위가 벌어지자 어제는 아예 협상 무효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 방침까지 밝혔다.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총재도 “국민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검역주권을 포기한 것 같은 협상이다. 쇠고기 때문에 FTA가 늦어진다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문제는 쇠고기야!’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지난달 18일 이후 반대 성명과 대변인 논평을 민주노동당(7차례)의 두 배 이상인 무려 15차례나 냈다. 이대로 가다간 18대 국회가 개원(開院)해도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처리가 장기 표류할 것 같은 분위기다.
한미 관계에서 쇠고기 협상과 한미 FTA가 ‘패키지’처럼 다뤄지고 있는 현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미국 의회는 ‘쇠고기 시장을 열지 않으면 FTA 비준 동의도 없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FTA 협상을 타결지으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관련해 “국제수역사무국(OIE) 결정이 내려지면 국제기준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그 약속을 이행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의해 동물검역에 관한 국제기준을 수립하는 국제기관으로 공인된 OIE는 이 문제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다.
손 대표와 이 총재는, 국가 장래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지도자라면, 쇠고기 협상과 FTA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익을 놓고 보다 거시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성찰하기 바란다. 이 총재는 세 번이나 대선에 출마했고, 손 대표 역시 국회 다수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정치지도자다.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눈이 어두워 국익을 외면해선 안 된다. 눈앞의 여론, 그것도 ‘괴담’ 수준의 비이성적 여론에 편승한다면 공당(公黨)의 지도자라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