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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 생활 속에 살포시 자리잡다

입력 | 2008-05-05 02:59:00


이정면 유타대 명예교수 영어판 ‘아리랑’출간 앞둬

《‘아리랑’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한 노학자의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됐다.

이정면(83) 미국 유타대 지리학과 명예교수가 영어로 쓴 ‘아리랑-한국의 노래(Arirang-Song of Korea)’가 출간을 앞둔 것. 이 책은 경기, 정선, 밀양 등 지역별 아리랑의 차이, 아리랑에 담긴 정서 등을 해외에 소개하기 위해 쓴 학술서다.

이 교수는 지난해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이라는 책을 국내에서 출판했으며 그 책에 새로 연구한 사실을 덧붙여 영어책을 집필했다.》

출간을 준비하기 위해 최근 한국을 찾은 이 교수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그는 서울대 지리교육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희대 경북대 등 국내 대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일본의 쓰쿠바대 교토대 호세이대에서 가르쳤다.

이 교수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아리랑이 많이 전파돼 있다는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 중 이 교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미국 개신교 측이 1990년 발간한 찬송가에 수록된 아리랑이었다.

해당 찬송가의 사진에는 ‘Christ, You are the Fullness’라는 제목 아래에 ‘Arirang’이라고 적혀 있고, 작곡가 이름을 쓰는 칸에는 ‘한국 곡(Korean melody)’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찬송가를 만드는 위원회 소속의 버트 폴먼이라는 작사가가 찬송가사를 이 곡에 붙였다.

이 교수는 어떤 연유로 아리랑이 미국 찬송가에 등장하게 됐는지 폴먼 씨에게 e메일로 물어 봤다. “너무나 아름다운 멜로디여서 찬송가에 쓰게 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위원회가 아시아, 남미 쪽의 곡을 찬송가에 수록하려는 시도를 하던 중 아리랑을 접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3월 미시간에 있는 손자를 만나러 갔다가 또 한 번 ‘미국 속에 자리 잡은 아리랑’을 발견했다. 손자가 다니는 샐린고등학교의 오케스트라가 아리랑 변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본 것.

“지도교사에게 수많은 곡 중에서 왜 아리랑을 선택했느냐고 물었더니 너무 아름다워서, 꼭 연주를 하고 싶어서 포함시켰다고 대답하더군요.”

이 교수는 아리랑이 이처럼 미국 사회에 퍼진 이유를 몇 가지로 해석했다. 우선은 해외 입양아들을 통해 확산된 것으로 그는 추정했다.

“언젠가 학교에서 아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 백인 학생이 아리랑을 안다면서 곡을 흥얼거립디다. 한국에서 입양 온 누나가 하도 노래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멜로디를 익혔다는 겁니다.”

이 교수는 또 6·25전쟁에 참전했던 유엔군 소속 군인들이 아리랑을 전파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2002년 월드컵이 아리랑 확산에 또 한 번의 기폭제가 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브라질에서는 현지인에게서 2002년 월드컵 때 들은 (한국 축구 응원단이 부른) 아리랑이 인상적이었단 말을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우연한 계기로 아리랑을 연구하게 됐다. 2005년 유타의 한인 신문 칼럼니스트로 있을 때 그는 ‘민족의 노래 아리랑’이라는 글을 썼지만 신문사에 넘기지 않았다. 그는 “잘 모르면서 섣불리 쓰는 건 곤란하다 싶어 한국으로 현지답사를 왔다”고 밝혔다.

그때 아리랑 연구가 김연갑 씨의 도움으로 정선 밀양 진도 등을 돌아보면서 아리랑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 뒤로 본업인 지리학 연구는 뒷전으로 한 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아리랑을 연구했다.

그는 “영어로 책을 쓰면서 한민족 특유의 감정을 영어로 옮기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아리랑에 깃든 ‘한(恨)’이라는 정서를 고민 끝에 ‘love and hate(애증)’로 옮겼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아리랑 이야기에 나오는 주모(酒母)의 영어 표현으로는 ‘웨이트리스(waitress)’ ‘메이드(maid)’ ‘서번트(servant)’ 등 어느 것 하나 딱 들어맞는 게 없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리랑을 공부하면서 나를 발견했다”면서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져 봤지만 아리랑만큼 ‘끌림’과 ‘감동’이 있는 대상은 없었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