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권기봉 선생님이 풍금을 치면서 말씀하셨다. 자∼ 내가 하는 대로 한 소절씩 따라 해 봐라! 예∼ 우리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풍금은 학교 안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물건이라 방금 여남은 명의 아이들이 조심조심 옆방에서 옮겨왔다. 삐걱대는 풍금에서 작지만 또렷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우리가 소리 높여 자랑스러운 선생님의 노래를 따라 부를 때 실제로 창밖에선 하늘 높이 새들이 날아갔다. 보리밭을 지나온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향기롭게 헤집었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라고 마주보며 외칠 때 실제 내 짝의 몸이 부쩍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범죄 노출 걱정하는 어린이날
그 오월의 공기 내음과 바람결이 아직 내게 이렇게 생생한데 세월은 그 위로 40년 넘게 흘러갔다. 그리고 다시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올해 어린이날은 참혹하고 참담하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돼버렸나. 하긴 예상치 못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다들 돈이 최고라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돈을 싸발라야 경쟁력이 커져 남을 이긴다고, 일류대학을 가야 성공한다고, 돈 되는 일이면 투기든 범법이든 못할 게 뭐냐고, 못하는 자들이 되레 바보라고, 쑥떡거리고 눈 붉히고 남의 여리고 상처 난 마음들을 짓이기며 외면할 때 그게 고스란히 내 아이에게 되돌아올 줄을 우리가 정말 몰랐던가.
아이를 성폭행하고 심지어 죽이고 파묻는 정신병자들이야 어차피 인구의 일정 비율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자. 문제는 그걸 우리끼리 지키지 못했다는 데 있다. 너도나도 ‘경제’에 매진하느라 사회의 자정능력이 사라져버리는 걸 방관했다. “고얀 놈” “불상놈” “인간 말종” 같은 공동체가 다함께 지탄하는 욕설들이 사라졌다. 그렇게 호통 칠 수 있는 어른도 사라졌다. 그러니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준이 없다.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어른들의 가치관을 저절로 배운다.
‘하늘이 본다’라는 것은 일자무식 우리 어머니의 도덕률이었다. 하늘이 무서워 남을 해코지할 수 없다는 인간의 기본 양심은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정과 지역사회가 어려서 분위기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며 가르쳐야 한다(물론 학교의 책임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요 며칠 미디어마다 넘치는 ‘우리 아이 지킴이본부 발족’이니 ‘어린이가 안전한 마을 만들기’니, ‘어머니 폴리스’니 ‘맘캅’이니 ‘범죄자로부터 내 아이 지키는 방법’ 같은 소란들은 정말 기막히고 낯 뜨겁다.
1923년 첫 어린이날을 선포한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 헌장에다 ‘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한다’라고 썼다. 그날 어른들에게 돌린 전단지에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말고 쳐다봐 줍시다’라고 쓰고 아이들에게는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라고 권했다. 80년 뒤에 읽어보는 이 말은 눈물난다. 가난 때문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어른을 만나면 공손하게 인사하라는 말 대신 낯선 어른은 일단 범죄자로 의심하라고 가르쳐야 하는 세상이 지난 40년간 우리가 그토록 허리띠 졸라매고 달려온 도달점인가.
잘못 바로잡을 진짜 어른 나와야
아아. 참담하다. 지금 7, 8세 된 아이들에게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아들과 딸은 이제 다 자랐으니 안심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을까.
내 나이 열 살이던 그날, 어린이날 노래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은 스물일곱에 첫아이를 낳은 내게 편지를 보내셨다. 장하고 통쾌하다. 김서령! 우리가 어린이날에 아이에게 선물해야 할 건 비싼 장난감이 아니다. 두 손으로 풍금을 칠 줄 아셨기에 내게는 일생 동안 위대했던 권기봉 선생님, 그런 선생님을 사회와 가정이 함께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