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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변강쇠의 서비스는 가정파탄 부른 ‘공공의 적’

입력 | 2008-05-06 03:00:00


《영화는 꿈과 환상의 세계로 우릴 안내하지만, 때론 의문과 고민의 바다에도 빠뜨린다. ‘영화에 숨겨진 메시지는 뭘까?’ ‘주인공의 행동은 선일까 악일까?’…. 이런 질문들은 영화가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3편에서 때론 인간적인, 때론 철학적인, 때론 실용적인 질문이 쑥 떠오르는 순간을 콕 짚어냈다. 나 혼자 묻고 나 혼자 답해 본 ‘자급자족’형 Q&A.》

○ 가루지기 (4월 30일 개봉)

Q: 변강쇠 행위는 사회공헌?

A: 아낙들 눈높이 올려 불륜 초래

Q=전쟁이 일어나자 마을 남자들이 모두 징발되어 전장으로 갑니다. 변강쇠(봉태규)는 마을의 유일한 남자가 됩니다. 그러잖아도 음기(陰氣) 넘쳤던 이 마을의 아낙들은 욕구불만에 잠을 못 이룹니다. 무질서와 혼돈 속에 빠지는 마을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변강쇠. 그는 마지못해 아낙들에게 ‘봉사’합니다. 변강쇠의 이런 행위는 나쁜 건가요? 남편들에겐 부도덕한 짓이지만, 마을 전체의 평안을 위해선 ‘사회공헌’이 아닐까요?

A=이 영화 보시면 후회하실 거란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웃기지도, 야하지도 않고요. 심지어 길기까지(상영시간 122분) 합니다.

일단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의 시각에서 보면 변강쇠의 행위는 ‘선(善)’입니다. 성(性)이라는 노동력을 제공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뤄 냈으니까요.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는 경제원리에 충실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마을의 미래를 위해선 변강쇠는 ‘공공의 적’입니다. 생물학에는 ‘역치(R値·threshold value)’란 개념이 있습니다. 역치란 ‘외부자극이 주어졌을 때 신체가 반응하는 최소한의 자극강도’를 뜻하는 말로, ‘문턱값’이라고도 부르지요.

당초 마을 아낙들이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만족을 얻기까지의 역치가 ‘1’이었다고 한다면, 변강쇠를 경험하고 난 뒤 아낙들의 역치는 ‘100’으로 뛰어오를 것입니다. 과거보다 100배는 더 강력한 자극을 받아야만 비로소 만족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전쟁터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마을 남편들은 아낙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절망하면서 ‘고객 감동’을 실현하는 데 실패하고, 결국 마을은 가정 파탄과 불륜으로 얼룩질 겁니다.

○ 아이언 맨 (4월 30일 개봉)

Q: 첨단무기 없애면 평화가 올까

A: 더 강력한 신무기 개발 부추기는 꼴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세계 최강의 무기업체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이자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무기설계자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신무기를 보유한 테러집단의 공격을 받고 크게 다친 뒤 개과천선하지요. 무기사업에서 손을 뗀 그는 “내가 만든 무기들을 내 손으로 없애 세계평화를 되찾겠다”고 결심합니다. 강력한 성능의 특수전투복을 개발해 입은 그는 일명 ‘아이언 맨’이 되어 적진에 침투한 뒤 첨단무기들을 파괴합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이 생난리를 치면 세계평화가 오긴 올까요?

A=평화는 안 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나왔다는 아이언 맨은 무기설계엔 천재일지 몰라도 인식의 수준은 ‘초딩’(초등학생)이군요. 그래서 공대생일수록 문학과 철학 같은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하는 겁니다.

아이언 맨은 유아독존(唯我獨尊)의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첨단무기를 없애면 악당들이 ‘아, 무기가 없으니 이제 평화롭게 살자’고 생각할까요? 순진한 말씀. 첨단무기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고 무기 암거래는 오히려 급증할 게 뻔합니다.

아이언 맨은 무기를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최첨단 슈트를 개발했지만, 결과적으론 더 강력한 또 하나의 신무기(특수 슈트)를 만들어냈을 뿐입니다. 주인공이 빠지는 이런 모순적 상황을 전문용어로는 ‘아이러니(irony·역설)’, 혹은 ‘눈 감고 아웅’이라고 하지요. 평화는 무장해제에서 오는 게 아니라 힘의 균형에서 온다는 게 정설입니다.

○ 호튼 (1일 개봉)

Q: 티끌 속에 또 다른 세상이?

A: 미물에도 우주의 섭리 숨쉰다는 말씀

=섬세한 코끼리 호튼은 민들레 씨앗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아주 작은 티끌 속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티끌 속의 또 다른 인류를 구하기 위해 호튼은 목숨을 건 여행을 합니다. 아, 비록 애니메이션이지만 뭔가 멋진 철학이 숨어 있는 것 같은데 ‘휴머니즘’ 외엔 딱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습니다….

A=좋은 질문입니다. ‘호튼’에 담긴 메시지는 동양철학의 틀로 다가갈 때 한층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일찍이 “만물개비어아(萬物皆備於我)”라 갈파했습니다. ‘만물은 모두 내 안에 갖춰져 있다’는 뜻이지요. 저 커다란 우주에 어떤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는지를 궁금해할 것이 아니란 얘깁니다. 우주의 섭리는 내 안에 있으니까요. 나라는 작은 존재 안에 우주의 존재원리가 숨쉬고 있듯, 나보다 더 작은 존재 안에도 우주의 섭리는 엄존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유명한 ‘천인합일(天人合一·하늘과 사람은 하나)’의 사상이 나오지요.

결국 ‘티끌 속 세계’는 우주의 섭리가 티끌 속에도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는 설정입니다. 이 영화는 “아무리 작을지라도 사람은 모두 귀하다(A person’s a person no matter how small)”이란 내레이션으로 이런 메시지를 설명하지만, 맹자의 철학이 훨씬 그럴듯한 풀이를 던져주지요.

만약 오늘 저녁 자녀가 “발가락 사이에 낀 때 속에도 우주의 섭리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난 오늘부터 발을 안 씻기로 했다”고 주장한다면, 아이를 크게 칭찬해 주세요. 그 아이는 천재일지도 모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