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적인 무기 발명가, 세계 최고의 군수산업자인 토니의 일상은 그야말로 영화다. 끝없이 이어지는 술, 미인, 파티의 나날은 그에게 그저 소소한 일상일 뿐이다. 그는 음성인식 인공지능 로봇, 명차들이 가득한 작업실과 매력적이고 명민한 개인 비서를 가졌다. 대륙을 횡단하는 자가용 비행기 안에서 차가운 사케와 승무원들과의 댄스파티 정도는 기본사항이다.
이런 그가 무기 판매를 위해 갔던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를 당해 한동안 사막의 굴에 갇히게 되고, 기지를 발휘해 놀라운 장비를 만들어 탈출에 성공한다.
영화 ‘아이언맨’의 내용이다. 영화에서 토니는 가까스로 탈출해 돌아오자마자 치즈버거를 찾는다. 모래바람 몰아치는 곳에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 돌아와 먹고 싶은 것이 깔깔한 목구멍의 먼지를 씻어줄 온더록스 위스키도, 허한 피하에 윤기를 채울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도 아닌 치즈버거였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나라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오랫동안 갇혀있던 생존자들은 기적같이 살아나오며 콜라, 사이다, 아이스커피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장시간 공복이었을 위장의 건강을 생각한 체온과 같은 온도의 미온수나 급속하게 떨어진 혈당을 보충할 음용약도 아닌, 마음이 더 바라는 종류였던 것이다. 그냥 물도 아닌 콜라였고 아이스커피였다. 이것은 개인의 미각이 기억하는 해갈의 느낌부터 일상으로의 회귀의 열망까지를 포함한 음료였을 것이다.
극한상황이라기보다 제한된 상황이라고 고쳐 말해야 할 군 복무도 이 비슷한 예로 충분하다. 군인들은 휴가를 나오면 자장면을 가장 먼저 원한다고 한다. 푸아그라를 곁들인 트뢰플 소스의 안심 스테이크나 깐풍기와 양장피가 아닌 자장면이나 군만두.
제한된 상황에 잠시라도 놓여났을 때 가장 원하는 음식은 왜 가장 좋거나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가장 자주, 가장 오래 먹은 음식인 걸까.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식으로 번역이 가능한 ‘컴포트 푸드’라는 말이 이것을 설명하기 좋을 듯하다. 마음이 기억하는 맛, 먹으면 편안해지는 익숙한 음식을 사람들은 좋아한다. 맥도날드 해피밀 선물에 혹해 어렸을 적 많이도 먹었던 미국의 맥도날드 어른들은 다른 어떤 음식보다 맥도날드 해피밀이 맛있다고 기억한다고 한다. ‘아이언맨’의 토니 역시, 어렸을 적 기억을 위무하고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삶으로 돌아왔다는 증거로 그 맛을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음식은 어쩌면 피와 살, 몸을 만드는 재료가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원료가 되는 것 같다. 나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제한된 상황의 끝에서 내 마음을 온통 움직일 바로 그 음식은 무엇일까? 100명의 사람에게 물으면 100가지가 나오지 않을까.
조 경 아 qua@dreamwiz.com
음식과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자칭‘호기심 대마왕’.
최근까지 잡지 ‘GQ’ ‘W’의 피처 디렉터로
활약하는 등, 12년째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전방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