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이 28일 막을 올리는 ‘백년언약’의 백성희(왼쪽) 씨와 장민호 씨. 사진 제공 국립극단
28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국립극단의 ‘백년언약’. 여기에는 원로 연극배우 백성희(73) 장민호(75) 씨가 주연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 ‘백년언약’은 국립극단 배우로서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른다.
국립극단이 창단 50년 만에 처음으로 정년제를 도입할 계획이기 때문. 국립극단을 운영하고 있는 국립극장 측은 최근 “극단 노조와 상의해 배우들의 정년 60세 도입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과연 연극배우에게 정년은 있는 것일까. 이를 놓고 연극계에선 의견이 분분하다.
국립극장이 정년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극단의 고령화 때문이다. 현재 국립극단의 배우는 26명이고 이 가운데 50세 이상이 13명에 이른다. 국립극단의 한 배우는 “10년 뒤에는 은발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날 텐데, 혹시 관객들이 그것을 실험극으로 보지 않겠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국립극단의 고령화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4년 동안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젊은 단원의 ‘수혈’도 이뤄지지 않았다.
영국 극단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의 경우 예술감독제를 강화해 작품에 맞는 배우들을 시즌별로 선발한다. 프랑스의 프랑세즈아카데미는 매년 오디션을 통해 전체 배우의 30%를 새로 충원한다.
국립극단은 2004년부터 매년 ‘상시 평가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 평가에서 탈락한 배우는 한 명도 없다. ‘종신제 국립극단’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울러 극단의 자체 경쟁력도 약화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예술 행위를 과연 나이로 잴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한 연극인은 “국립극단이 정체됐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예술인의 정년을 역량이 아니라 나이로 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립극단 내부에서도 정년제를 대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지낸 한 연극인은 “정년제는 고육책”이라며 “국립극장의 독립 법인화 방침이 추진되면서 국립극단이 스스로 변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극단의 권혜미 책임프로듀서는 “일부 배우를 중심으로 (정년제에) 반발이 있지만 젊은 배우들 사이에서 정년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강해 일단 추진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며 “그 대신 작품 출연에 따라 공연 수당을 지급하는 비상근 단원을 늘리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백 씨와 장 씨의 경우엔 작품별로 출연 계약을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