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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8년 SF 거장 하인라인 타계

입력 | 2008-05-08 03:00:00


“어떻게 하면 서른 살의 머리 나쁜 사람이 열다섯 살의 천재보다 더 현명하게 투표할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네…. 하지만 그것은 ‘일반인의 신성한 권리’ 시대에나 있었던 일이야. 신경 쓸 필요는 없네. 그들은 그 우매함의 대가를 치렀으니까.”

우주 전투함을 타고 다른 행성에 투하돼 외계인과 싸우는 기동보병 조니 리코는 장교가 되기 위해 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교관은 일정 연령이 되면 누구에게나 투표권을 주는 ‘보통선거’라는 황당한 제도가 먼 옛날 지구에서 운영됐다며 이렇게 설명한다.

로버트 하인라인이 1959년에 펴낸 소설 ‘스타십 트루퍼스’의 한 대목이다.

하인라인은 ‘로봇’ ‘파운데이션’을 쓴 아이작 아시모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작가 아서 클라크와 함께 사이언스픽션(SF)의 황금기였던 1940, 50년대 ‘SF의 3대 거장’으로 꼽혔다. 1988년 5월 8일 타계하기 전까지 그는 ‘미스터 SF’로 불렸다.

SF소설 애호가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폴 버호벤 감독이 1997년 만든 동명의 영화에서 곤충형 우주생물과 기동보병들이 참혹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은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아 있다.

하인라인이 이 책에서 그린 미래의 지구는 일종의 군국주의 사회다. 군대에 지원해 2년 이상 복무한 사람에게만 ‘시민’ 자격이 주어져 참정권과 피선거권을 얻는다. 범죄자는 등을 채찍으로 때리는 형에 처한다. 이런 내용 때문에 하인라인은 파시스트라는 일부의 비판을 받았지만 책은 과학소설계의 최고상인 ‘휴고상’을 받았다.

성공적인 SF 작가들은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클라크는 1940년대에 ‘통신위성’의 개념을 미리 창안했고, 아시모프는 ‘로봇 3원칙’을 고안했다.

스타십 트루퍼스에서 기동보병이 입는 ‘강화복(powered suit)’도 이처럼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강화복 아이디어는 이후 수많은 SF 소설과 건담 시리즈 등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확대재생산됐다. 미군이 개발하고 있는 미래형 보병장비도 하인라인의 콘셉트에서 출발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