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서 ‘신비주의’ 패션쇼 日 디자이너 야마모토 요지▼
“나는 옷을 만드는 동물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스스로 동물이라니. 하지만 그만큼 패션에 동물적인 감각을 갖고 있다는 ‘고난도’ 자화자찬임을 알 수 있다. 디자이너 야마모토 요지. 그는 미야케 잇세이(三宅一生), 가와쿠보 레이(川久保玲)와 함께 일본 패션계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신비주의를 표방하는지 매번 어디로 숨는다. 중국 첫 패션쇼를 마치고 그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는 파티장에도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그런 그를 귀국 후 e메일 인터뷰로나마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쇼는 지금까지 내가 한 패션쇼 중 가장 독창적인 쇼라고 생각합니다. 1년에 5개 이상의 쇼를 준비하는데 저는 이번 쯔진청 패션쇼를 위해 모든 걸 제쳐두었어요. 몸이 힘든 것도 못 느꼈답니다.”
그는 올가을 베이징에 ‘와이즈’ 매장을 열고 2010년까지 12개 단독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사업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그는 의외의 얘기를 꺼냈다.
“나를 사업가가 아닌 ‘아티스트’로 봐주었으면 합니다. ‘중일전쟁’ 전후세대인 내가 느끼는 것은 ‘전쟁으로 중국에 피해를 입힌 일본 사람으로서 디자이너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패션쇼를 시작으로 중국의 젊은 패션 디자이너와 모델들을 선발해 지속적인 후원을 할 것입니다.”
160cm도 안 되는 작은 키. 그러나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꼽힐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기존 패션 관념을 과감히 걷어찼기 때문이다. 그의 패션철학을 한마디로 묻자 그는 서슴없이 ‘저항(Rebellion)’이란 단어를 꺼냈다.
“난 ‘안티 패션주의자’예요. 아름다운 것만이 패션이자 유행이 아니거든요. 왜 패션은 대칭을 이루어야 아름다운지 모르겠어요.”
파격, 비대칭, 아방가르드로 대표되지만 그는 원래 법학도(게이오대 법학부)였다. 1972년 ‘와이즈’를 설립하고 디자이너로 변신한 그는 1981년 파리로 진출해 일명 ‘빅 룩’, ‘히로시마 시크’라는 특유의 스타일을 완성하며 인기를 얻었다. 1999년에는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CFDA)가 주는 국제상을 수상했고 이후 아디다스, 에르메스, 만다리나덕 등의 브랜드와 협업을 하며 뻗어나갔다. 그런 그의 다음 목표는 중국. 그렇다면 한국 시장에 대한 진출 계획은 없을까? 그는 “아, 그건 잘 말해야 되니 좀 시간이 흐른 뒤 말해주겠다”며 뜸을 들였다. 올해 나이 예순다섯. 그는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다. ‘왜’라고 반문하는 것도 변함없었다.
“나이 들면 왜 멈추어야 하나요? 창조해내는 순간만큼 내게 행복한 시간도 없어요. 내가 은퇴해도 그 창조는 계속 나를 움직일 겁니다.”
베이징=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