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병든 몸이지만
고국 꼭 돕고 싶었지
3월 중순. 지난해 10월부터 인천 남동구 논현지구 국민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영주귀국 사할린동포 582명에게 KT&G복지재단이 봄나들이를 제안해왔다.
평균 나이 75세인 이들 사할린동포는 올 초 추진하다 경비가 없어 포기했던 ‘나들이 장소’를 떠올렸다. 지난해 말 유조선 충돌로 기름유출 사고가 난 충남 태안이었다. 국민 45명당 1명꼴로 다녀왔다는 곳. 60년 아니 70년 만에 이제 겨우 돌아온 ‘내 나라’에 뭔가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입주자대표가 봉사자를 모집한 지 3일 만에 380명이 모였다. 이들은 지난달 24일 태안 기름 닦기 작업에 나섰다. 기자도 그 특별한 봄나들이에 동행했다.▶dongA.com에 동영상
▼영상 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 귀국 후 첫 나들이
오전 10시 30분 사할린동포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차례차례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의항해수욕장에 도착했다. 6시 30분에 인천의 임대아파트 앞에서 모여 인원 점검을 한 뒤 출발했으니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출근 길 교통체증 때문이었다.
한 시간 남짓 해수욕장 일대 기름 찌꺼기를 열심히 찾아다니며 닦는 한준이(79) 할머니에게 태안행은 지난해 11월 말 한국에 온 뒤 첫 나들이였다.
“차 멀미 때문에 멀리 가지를 못했어요. 오늘은 약 먹고 왔는데 아직까지는 괜찮네요.”
1929년 전북 장수군에서 태어난 한 할머니는 1933년 아버지가 일제의 강제징용에 동원되면서 함께 사할린에 갔다. 1945년 해방이 됐지만 사할린에서 귀국한 건 일본인뿐이었다. 한 할머니도 다른 많은 사할린 동포들처럼 사할린에서 정착해 아이 5명을 낳고 살았다.
나이보다 건강해 보이는 외모지만 그래도 팔십 줄에 들어선 한 할머니가 굳이 약까지 먹어가며 태안으로 첫 나들이에 나선 이유는 뭘까. 그는 “사할린에서도 바닷가에서 살아 어민들의 심정을 다 안다”고 말했다. 조국에 왔으니 어떻게 해서든 ‘우리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인숙(69) 씨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백내장 수술 날짜도 미뤘다. 지난해 10월 귀국 직전까지 밭일 등을 했던 이 씨는 “여기 와서 편안하게 사니까 눈에 병이 난 모양”이라며 “수술이야 조금 미루면 된다”고 말했다.
김성권(68) 전임순(66) 씨 부부도 이번이 첫 나들이다. 부부는 차 안에서도, 바닷가에서도 손을 꼭 잡거나 팔짱을 끼고 다녔다. 다정해서이기도 하지만 유방암이 척추까지 번진 전 씨를 남편 김 씨가 돌보기 위한 것이다.
이들 부부는 사할린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살았다. 생전에 그토록 고국에 가고 싶어 했던 부모를 대신해 이번에 영주귀국했다. 전 씨는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살까 싶어 처음이자 마지막 나들이라는 심정으로 참가했다”며 “별로 힘은 없지만 고국에 도움도 주고 바다도 한 번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직까지 주민등록이 발급되지 않아 약값이 비싸다”며 “그래도 모스크바보다 깨끗한 공원과 풀밭을 둘이서 다니면서 생활하는 게 참 좋다”고 말했다.
○ 늦게 와서 미안할 뿐이죠
평남 강서 출신인 박준석(73)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독립운동 전력 때문에 일제의 감시를 피해 만주로 갔다가 사할린으로 이주했다. 아버지처럼 독립운동가들이 어렵사리 지켜낸 고국인데 기름 오염 현장을 앉아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작년 12월 기름유출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박 할아버지는 현장으로 달려오고 싶어 속이 탔다.
“와서 보니 너무 늦게 온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사실 이날 사할린 동포들이 기름을 닦은 곳은 많은 자원봉사자가 다녀간 곳이었다. 그래서 기름이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곳에서 10분만 걸어 들어가도 여전히 기름이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 있지만 노인들의 안전을 생각해 KT&G복지재단이 이를 만류했다.
“우린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밥 벌어먹고 살았기 때문에 조국에 아무런 도움을 못 줬는데 늙어서 돌아왔다고 대접받고 있잖아요. 그것도 고맙고 미안하죠.”
박 할아버지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충남 논산이 고향인 조숙재(77) 할머니는 귀국 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향과 가까운 곳에 간다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도로에 충청남도라고 쓰인 표지판이 나오자 “저기 어디쯤인가…”라고 혼잣말을 하며 목을 길게 뺐다.
고혈압에 당뇨로 약을 달고 사는 조 할머니는 이날 아침에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관광버스에 올랐다.
“처음에 이런 행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남의 나라에서도 이날까지 일을 하고 살았는데, 내 나라를 위해 내가 도움 못 줘서야 쓰겠나 싶었어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내 고향 땅하고 가깝대. 그래서 마음이 자꾸 이쪽으로 끌렸나 봐….”
○ 생활고에 시달려도, 기억에는 없어도 내 나라
멀미나 병 때문이 아니라고 해도 많은 사할린 동포들은 관광에 나설 형편이 안 된다. 정부에서 주는 한 달 생활비 30만 원 남짓으로는 아파트 임차료와 전기세 등을 내고 나면 10만 원이 채 안 남는다.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한두 가지 병 없는 사람이 없었고 병원에 다니다 보면 새 옷을 사 입기도, 외식을 하기도 쉽지 않다.
많은 사할린동포가 귀국 전에 챙겨온 돈을 생활비에 보태고 있었다.
정군자(65) 씨는 “그동안 자식들에게 얻어온 돈을 보태서 생활을 유지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며 “그나마 크게 아픈 데가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사할린동포들은 러시아에서의 생활을 ‘중간치’라고 표현했다. 한국인들은 부지런해서 사업을 잘 운영해 중류층의 생활수준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아파트를 소유하고 자동차도 굴렸다는 뜻이다. 이런 그들이지만 고국에서의 생활이 훨씬 행복하단다.
부인과 함께 귀국한 김진생(69) 씨는 “러시아에 두고 온 자식들과 손자가 보고 싶지만 갈 형편이 안돼 참는다”며 “자동차가 없어 불편하고 근근이 생활하지만 그래도 내 나라니까 좋다”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영상 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