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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산책]메이지 진구-동대문 구장의 ‘생과 사’

입력 | 2008-05-09 02:59:00


‘그는 올해 82세이지만 여전히 정정하다. 매일같이 수만 명을 맞이한다. 그의 후덕한 그라운드에서 백구의 잔치는 계속된다.’

일본 도쿄 인근 메이지 진구 구장. 1926년 10월 3만8300석 규모로 세워진 이 구장은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의 홈구장이다. 올 시즌 9세이브를 올리며 야쿠르트 수호신으로 자리 잡은 임창용도 이곳에서 공을 던진다.

4월 이곳을 다녀왔다. 구장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돼 조용했다. 경기장 내부는 노후했다. 벽면 페인트는 색이 바랬고 통로 천장은 녹슨 쇠파이프가 곳곳에 보였다. 반지하에 있는 기자실에서는 경기장이 잘 보이지 않아 일본 취재진은 TV를 함께 보며 경기 상황을 기록했다. 1층 식당은 5, 6군데뿐인 데다 좌석이 없어 음식을 서서 먹어야 했다.

그런데도 진구 구장은 연일 야구팬으로 북적였다. 팬들은 오래된 야구장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8일 서울지하철 2, 4, 5호선이 만나는 동대문운동장역. 많은 인파가 오가는 고층 패션몰 건너편은 썰렁했다. 180cm 높이의 철제 가림막에 둘러싸인 채 흙더미만 남은 빈터가 눈에 띄었다. 지난해 12월 철거된 동대문야구장 자리다. 이달 중순 축구장까지 철거되면 2010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와 공원이 들어선다고 한다.

가림막 주변에는 동대문 풍물시장 사수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생계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한 상인은 “야구장이 철거된 후 이곳을 찾던 어르신들의 발길이 끊겨 아쉽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1925년 10월 경성운동장으로 처음 문을 연 것으로 추정되는 동대문야구장은 1959년 정식 준공돼 48년간 아마추어와 프로야구의 메카로 사랑을 받다 사라졌다. 이제 아마추어 야구는 목동야구장과 구의 간이야구장 등에서 맥을 잇고 있다.

하지만 동대문야구장의 퇴장은 아쉬움이 남는다. 진구 구장은 전광판을 바꾸고 인조잔디로 교체하는 등 80년이 넘도록 살아 숨쉰다. 그런데 우리는 ‘야구의 고향’을 너무 쉽게 허물 생각만 한 건 아닌지….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