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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FTA와 자동차가 무너진다

입력 | 2008-05-09 20:14:00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광활한 목초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 떼를 자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횡성한우 안동황우 강진맥우가 유명하지만 쇠고기의 맛은 어떤 품종을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먹여 키웠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스테이크 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미국이다. ‘재협상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국회의원들도 미국 출장 때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미국산 스테이크를 먹어 봤을 것이다.

“우리 도시민이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쇠고기를 먹고 있다. 일반 시민이 값싸고 질 좋은 고기를 먹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뒷얘기를 하다가 미국산 쇠고기를 이같이 호평해서 농민단체의 반발을 샀다. 이 발언의 적절성은 내버려두고 미국 슈퍼마켓에서 쇠고기를 사 먹어 본 사람들은 ‘값싸고 질 좋은’이라는 말에 별 이의 없이 동의하게 된다. 미국 농무부는 성숙도, 마블링, 살코기의 조직과 색깔에 따라 쇠고기를 8등급으로 분류한다. 국내에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의 대부분은 2, 3등급으로 맛이 좋은 편이고, 가격은 국산 쇠고기의 3분의 1 수준이다.

쇠고기 없는 한미 FTA 없다

유럽에서 광우병이 집단 발병한 원인은 소의 단백질 공급원인 콩가루와 관련돼 있다. 유럽에서는 콩이 잘 자라지 않는다. 1980년대부터 유럽 국가들은 콩가루 값이 급등하자 소의 단백질 공급원을 육골분 사료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콩가루가 싸고 풍부한 미국에서는 동물성 사료를 쓰는 목장이 드문 편이었다. 유럽에서 광우병이 창궐했을 때도 미국에서는 단 3마리만 발견됐다. 그중 한 마리는 캐나다에서 수입된 소이고 두 마리는 반추동물에 동물성 사료를 금지한 1997년 8월 이전에 태어난 소다.

서울대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는 ‘국내는 안전하다는 주장만으로 국내 소에 대해 국제적으로 인정될 만한 광우병 검사를 하지 않은 한국은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으로도 가장 위험한 나라군에 속한다’고 주장했다(한겨레신문 5월 5일). 따라서 협상 중에 한국이라는 광우병 위험국이 나름대로 통제국 판정을 받은 미국 쇠고기를 안전하지 않다고 말하기 힘들었으리라는 것이다. 환경이나 식품안전 같은 문제에서 무한정 붙잡고 늘어지다 보면 미국산이든 한국산이든 먹을 것이 사라지게 된다.

필자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에 미국 정부 관계자로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미국산 쇠고기에 관해 배경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한미 FTA 협상 때 쇠고기 재개방을 안 하면 FTA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미 의회의 상황도 쇠고기 수입 재개방 없는 한미 FTA 비준동의는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는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면서 미국 농업 관련 기업들이 한미 FTA 비준동의를 받기 위해 의회를 설득하는 데 나서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미국 내에서 한미 FTA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주로 자동차 분야에서 나온다.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자동차 부문을 재협상하자고 할 것이 거의 분명하다. 2006년 한국은 국산 자동차 69만8311대를 미국에 수출하고 미제 자동차 3059대를 수입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미국이 열 받게 돼 있다. 한국에서 수입하는 자동차 때문에 미국 자동차 회사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한국 시장에서는 소형은 국산만 팔리고 중대형은 일본차와 유럽차를 선호한다. 재협상을 하더라도 이런 시장의 선호가 바뀔 성싶지 않다.

한미 FTA가 미 의회를 통과하기까지에는 의회와 행정부,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수많은 거래가 있어야 한다. 하원의 다수당인 민주당은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어 한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콜롬비아-미국 FTA만 통과시키려고 하지만, 한미 FTA까지 통과시키면 근로자 보호와 경기부양책 법안을 딜하는 데서 더 크게 받을 수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에 양보를 해서라도 임기 안에 한미 FTA를 통과시키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미국시장 車수출 70만 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 의심스러우면 호주산이나 한우를 먹으면 된다. 그러나 무역이란 서로 상대가 있다. 미국에 국산 자동차를 70만 대씩 팔면서 과학적 근거가 없는 괴담 논리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체를 막으면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시장에서도 발붙이기 어렵다.

참고가 될지 모르겠지만 필자 가족은 반추동물에 동물성 사료가 금지되기 직전 1년 동안 미국에 거주하며 쇠고기를 실컷 사먹었다. 그렇지만 광우병 잠복기(2∼8년)를 넘겨 건강하게 살고 있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