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한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소녀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눈의 거처로 일컫는 히말라야 산맥의 에베레스트 8848m 정상에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입니다. 아직도 융기운동이 진행되어 산정의 고도를 높이고 있다는 정상까지 소녀가 혼자서 오르기란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였습니다.
소녀가 그런 꿈을 가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네팔 국민들뿐만 아니라 세계 산악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바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두 번이나 정복했던 소녀의 삼촌이었습니다. 소녀를 지극히 사랑하는 그 삼촌이 없었다면 애당초 엄청난 꿈을 가질 수 없었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험준한 등정로의 사정을 너무나 잘 꿰뚫고 있는 삼촌이 소녀와의 등정을 손쉽게 동의할 리가 없었지요.
소녀는 집요하게 삼촌을 졸랐습니다. 거의 일년 동안이나 부대끼다 못한 삼촌은 드디어 소녀와 같이 에베레스트에 오르기로 결심합니다. 눈밭뿐인 정상에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소녀의 간절한 꿈과 의지를 가보지도 않고 무참히 꺾어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계절풍이 불지 않는 5월 중순 두 사람은 드디어 등정 길에 올랐지요. 처음에는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로 루크라에 도착합니다. 거기서부터는 사과나무를 캐 담은 배낭을 메고 걸어서 남체, 당보체, 팡보체, 딩보체, 로부제, 고랍셉을 거쳐 드디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합니다. 두 사람의 등정은 그곳에서부터 아이스폴 지대를 거쳐 쿰부 빙하를 오르기 시작합니다.
뼛속까지 파고들어 육신을 뒤흔들어대는 굶주림과 추위. 그런 와중에도 끊임없이 얼굴을 할퀴는 칼바람과 갈개치는 눈보라. 퉁퉁 붓고 터진 입술과 살갗. 얼어붙은 진흙 바닥이 아니면 빙하 위에서 청하는 새우잠. 때때로 시야를 가로막고 비켜나지 않는 환영. 한 발 전진하자면 두 발 더 후퇴해야 하는 덧없음. 나날이 늘어나는 동상,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이 두 사람을 껴안고 놓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이겨낸 다음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두 사람은 드디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소녀는 배낭을 풀어 눈밭을 헤치고 사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눈밭 아래에 있는 회색 석회암까지 사과나무의 뿌리가 내려 무럭무럭 자라주기를 빌었습니다.
두 사람은 무사히 하산하여 카트만두로 돌아와 일상에 파묻혀 지냈습니다. 삼촌은 70세의 노인이 되었고, 소녀는 40세의 중년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히말라야를 등정했던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사과를 따먹고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이 네팔의 카트만두 시내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주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