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맞닥뜨린 어려움으로 3고(高) 현상을 꼽았다. 고유가 고금리 고원화로 경기 회복세가 꺾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새로운 3고 현상이 한국 경제의 골칫거리다. 세 주인공 중 하나만 그대로이고 둘은 새 얼굴로 바뀌었다. 고유가는 계속 진행 중이지만 고금리와 고원화는 각각 고물가와 고환율에 자리를 내줬다. 작년엔 환율이 너무 낮아 기업의 수출 채산성이 나빠졌다고 아우성이더니 환율이 올라가면서 이젠 물가에 미칠 주름살이 부담스럽다. 한국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환율이 너무 올라도 걱정, 낮아도 걱정이다.
▷아무리 경제이론에 해박한 전문가라도 여러 변수가 얽히고설킨 경제현상을 누구나 알기 쉽게 해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 관련 조어(造語)가 유독 많은 것은 이런 특성과도 무관치 않다. 특히 3고 3저(低) 같은 용어는 단순화의 오류를 빚을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흥청대거나 갑자기 곤두박질쳤을 때 핵심을 압축해 설명하는 데 강점을 발휘한다. 같은 말이라도 당시 상황에 따라 의미는 180도 달라진다. 1980년대 후반 한국 경제의 전례 없는 호황을 이끈 3저는 저유가, 저원화, 저금리였다. 반면 요즘 한국 경제의 우울한 현실을 나타내는 3저는 저성장, 저고용, 저소비다.
▷올해 세계 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지금 예상대로 4%대 중반의 성장을 이룬다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는 것이 한국은행의 판단이다. 물론 7%대 성장을 공언해 국민의 기대치를 부풀린 현 정부의 책임은 별개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앞날을 내다보고 규제완화와 투자여건 개선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다.
▷유가나 원자재 값 상승 같은 외부 악재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남 탓만 해서도 곤란하다. 3고(高)가 두려운 것은 서민 같은 경제적 약자들에겐 곧바로 3고(苦)가 되어 생활고를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정부 여당 내부의 혼선만 없애도 서민의 고통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쓸데없는 힘겨루기는 그만두고 추경예산 편성이든 감세든, 정책 처방전을 조속히 마련해 차질 없이 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박원재 논설위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