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우(敵友) 관계를 정치의 본질적인 범주로 보려는 견해도 있는 것 같다. 과학에서는 진위(眞僞)의 관계가, 예술에서는 미추(美醜)의 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정치에서는 적의 편, 저쪽 편이냐, 우리 편, 이쪽 편이냐를 가르는 적우(敵友)의 관계가 기본적인 범주가 된다는 뜻인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는 노무현 전직 대통령을 두고 비난했던 ‘편 가르기’란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니라 무릇 정치와 정치인에겐 일반적인 속성이라고조차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의 세계에선 누구나 제 나름대로 편 가르기를 한다. 독재자라면 모른다. 대내적으로 국민 99%의 압도적 지지를 조작하고 훤전하는 히틀러의 나치 체제, 스탈린의 소비에트 체제, 그리고 북한의 김씨 세습 체제에는 편 가르기가 필요 없고 적우관계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도시 정치 그 자체를 없애버렸으니.
그에 반해 선거를 통해 나라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정치 체제에서는 편 가르기와 피아(彼我)의 적대관계가 없을 수 없다. 노무현 전직이 비난을 받게 된 것은 실인즉 편 가르기를 했다 해서가 아니라 그걸 너무 ‘잘’해서 나라가 동강이 나버릴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내 편 ‘극소화’하는 어리석음
이명박 대통령도 편 가르기를 한다. 그렇게는 안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하고 있다. 요즈음 이 대통령이 구설수에 오르고 취임한 지 100일도 못 돼 국정 지지도가 30% 이하로 폭락한 것도 편 가르기를 해서가 아니라 그걸 너무 ‘잘못’해서 나라가 동강이 나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편 가르기의 전략 면에서는 노무현 전직이 이명박 현직보다 고수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적 편을 극소화하고 우리 편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그를 위한 구체적인 방편이 적 편만 아니면 모두 우리 편으로 끌어안는다는 포용정책이다.
이러한 전략을 과거에 가장 체계적으로 펼친 역사적 사례가 제2차 세계대전 뒤 소련이 그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온 지역에서 펼친 ‘민족전선’ 전략이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나치와 파쇼 세력을 제외한 온건 우파, 중도파, 좌파 세력 모두를 ‘반(反)파쇼 블록’이란 ‘민족전선(Nationalfront)’의 천막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고 한반도에서는 이른바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제외하고 우파에서 좌파에 이르는 모든 세력을 ‘민주주의 민족전선’의 기치 아래 결집시키려고 좌익에서는 공작했다.
국민을 서울시민과 비(非)서울시민으로 편 가르고 서울시민을 다시 강남과 강북으로 편 가르기 하고 거기에 다시 새 오적(五賊)과 비(非)오적으로 편 가르기를 하면 저쪽, 노 전직의 반대편은 국지화 극소화되고 이쪽, 노 전직 편은 극대화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침묵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일반 국민이 소리 없이 반기를 들었다. 노 전직과 그쪽 편, 그리고 그들의 정책과 하는 짓을 보고 있자니 그것은 결국 대한민국을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도의적으로 약체화시켜 가고만 있다는 것을 대다수 국민이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그들이 바로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청와대에 입성시킨 조직되지 않은 다수였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집권 후 자기편을 이른바 ‘고소영’ ‘강부자’ 일파로 국지화 극소화하는 어리석음을 보였다. 더욱 어쭙잖은 것은 청와대 안의 좁은 우리 편 아닌 모든 세력을 반대편, 저쪽 편으로 몰아가는 듯한 작태다.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이라 할 박근혜와 친박 세력까지, 심지어 당청관계 내지 당정관계에선 여당까지 야당으로 보는 도량 좁은 배척정치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으니….
궤도 수정해야 통치 정상화
이대로 갈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덕은 없어도 머리는 있는 이 현직이 무엇이 현명하고 무엇이 어리석은 짓인지 조만간 깨닫고 통치의 정상화를 위한 궤도 수정을 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필경 그는 5년 후엔 성공한 대통령으로 청와대를 물러날 것인지. 아니면 또 한 사람의 실패한 대통령으로 하야할 것인지. 나는 이 도박에선 전자에 건다.
전자의 경우 마침내 성공한 대통령의 출현은 국리민복을 위해 좋다. 후자의 경우엔 내 평소 지론인 대통령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안이 더욱 힘을 얻게 되어 좋다.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도 이건 손해 볼 것 없는 도박이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