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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무대에서 캐묻는 ‘살인의 진실’… 연극 ‘나생문’

입력 | 2008-05-15 02:59:00

연극 ‘나생문’에서 무사의 아내가 산적에게 남편을 죽이라고 꾀는 장면. 사진 제공 쇼플레이


‘나생문(羅生門)’은 부담을 많이 짊어진 연극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이 워낙 잘 알려진 데다 그 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는 거장의 원작 소설이 있기 때문. 아쿠타가와의 단편 ‘나생문’과 ‘덤불 속’을 엮어 각색한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가 일찍이 ‘진실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냈기에 연극 ‘나생문’의 부담은 더할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면서 ‘나생문’ 자체가 연극적이라고 생각했다. 롱테이크 기법을 자주 쓰고, 여러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연출가 구태환 씨)

실제로 연극은 영화의 내용을 크게 변주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간다. 나생문 앞에서 만난 나무꾼과 스님과 가발장수가 주고받는 살인사건의 재판 내용도 다르지 않고 산적과 무사의 아내, 무사의 혼령 등 살인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저마다 다르게 말하는 진술도 그렇다. 그것은 다양한 예술 장르로 변주되는 텍스트의 뛰어남을 확인시키면서 새삼 무릎을 치게 한다.

연극은 이 유명한 이야기를 꼼꼼하고 충실하게 재현하는 데 집중한다. 군데군데 유머를 곁들이면서도 ‘진실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이미 영화와 소설에서 던졌던 깊은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간결한 문체미가 돋보이는 소설, 절제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와 달리 연극은 수려한 의상과 극적인 칼싸움 장면, 화려한 퍼포먼스 등을 곁들여 시각적 효과를 높였다.

배경 음악으로 쓴 타악기 연주도 강렬하다. 그것은 연극이 ‘지금, 여기’에 대한 고민보다는 이야기 ‘나생문’에 대한 열렬한 오마주를 담고 있음을 알려준다.

가발장수 역을 맡은 서현철 씨의 연기력도 뛰어나다. 무대에서 큰 움직임이 없는데도 활달하고 능청맞은 대사만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 씨가 나오는 장면이 기다려질 정도로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연기를 보여준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6월 29일까지. 3만5000∼4만 원. 02-708-5002


▲ 영상취재: 동아일보 문화부 유성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