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연주법 고집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쿠이켄 21일 내한공연
인생이란 알 수 없는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관심 없이 늙어가는 인생은 제게 낭비일 뿐입니다. 침묵과 명상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는 것은 음악가에게 소중합니다.”
벨기에 출신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지기스발트 쿠이켄(64)은 가끔 부인과 함께 장기간 휴가를 떠난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으로 낙타와 함께 가서 3주간 머물다 오는가 하면, 스페인의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서 당나귀를 끌고 한 달간 도보 순례 여행을 다녀온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세계적인 음악가가 악기도, 악보도 없이 그야말로 ‘비우기 위한 여행’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지난해 쿠이켄과 함께 바흐 ‘요한 수난곡’ 유럽순회 연주를 했던 소프라노 임선혜 씨는 쿠이켄에 대해 “음악가이기에 앞서 인간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쿠이켄은 2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고(古)음악 앙상블 ‘라 프티트 방드’와 함께 내한 공연을 한다.
‘라 프티트 방드’는 이번 공연에서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한다. 7명으로 구성된 최소 편성으로 연주되는 ‘사계’는 무척 희귀한 장면이 될 것이다. 그는 바흐의 칸타타나 요한 수난곡 등도 4명의 성악가가 솔로와 합창을 동시에 하는 최소한의 편성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고전시대의 음악은 악기 하나하나의 개성을 살리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바흐는 대부분 4명 또는 드물게 8명의 성악가를 썼습니다. 오케스트라 악기도 파트별로 1, 2대에 불과하지요. 악기 수가 줄면 고도의 투명함과 섬세함, 정제된 표현력으로 아름다운 앙상블을 얻을 수 있습니다. ‘콘체르토(협주곡)’가 하나의 솔로 악기와 다른 많은 악기의 대조라는 것은 낭만시대 이후의 개념입니다. 예를 들면 바흐의 ‘이탈리안 콘체르토’는 하프시코드 한 대를 위한 것이었지요.”
쿠이켄은 40년 전부터 요즘처럼 턱과 어깨 사이에 바이올린을 끼우는 게 아니라 어깨에 올려놓는 18세기식 바이올린 연주법을 복원했다.
그는 e메일 인터뷰에서 “레오폴트 모차르트, 프란체스코 제미니아니 등 명바이올리니스트들이 모두 이렇게 연주했다”며 “120년 전에도 악기들이 요즘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연주됐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쿠이켄의 제자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진(무지카 글로리피카 리더) 씨는 “턱에 끼우지 않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은 어려운 테크닉이지만, 악기통이 정말 순수하게 울려 투명하고 찬란한 음색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주회에서 눈여겨볼 것은 요즘 보기 어려운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라는 악기다. 이것은 첼로처럼 다리 사이에 끼워서 연주하는 게 아니라 끈에 매달아 어깨 위나 가슴에 올려놓고 연주하는 18세기 악기다.
쿠이켄은 이 악기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을 연주한다. 쿠이켄은 “바흐가 쓴 악보를 보면 ‘비올론첼로’가 요즘처럼 베이스가 아니라 바이올린 파트일 경우도 많다”며 “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불가능했던 코드나 아르페지오가 정상적으로 연주되는 것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쿠이켄은 “어떤 작곡가도 ‘미래의 악기’를 위해 작곡하지 않았다”며 “바흐의 곡을, 차이콥스키를 연주하는 테크닉으로 연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악기나 연주 테크닉이 시대에 따라서 ‘진보’해 왔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시대에 맞는 연주법을 복원할 때 작품이 비로소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공연 티켓은 4만∼12만 원. 02-586-2722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