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국제음악콩쿠르 결선에서 손톱 부상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효선 씨.
피아니스트가 건반 위에서 피를 흘릴 수 있다?
이같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연주회장에서 심심찮게 일어난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의 전속 피아노 조율사인 이종열 씨는 “피아노 연주를 마친 후 건반 위에 붉은 핏자국이 남아 있을 때가 종종 있다”고 말한다.
지난달 말 폐막한 제4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의 결선 무대에서도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 독일 하노버국립음대에 재학 중인 피아니스트 임효선(2003년 비오트국제콩쿠르 1위) 씨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3악장을 연주하던 도중 손톱을 보며 무척 아픈 표정을 지었다.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악명 높은 빠른 악장을 치다가 손톱 밑 살갗이 떨어져 피가 난 것이다.
연주가 끝난 후 피아노를 조율하러 간 이 씨는 다음 순서의 연주자를 위해 붉게 물든 건반을 물휴지로 정성껏 닦아내야 했다.
임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는 정말 일어나서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죠. 그러나 오케스트라 연주가 계속되자 어디서 힘이 나왔는지 아픈지도 모르고 끝까지 건반을 두들겨 댔습니다.”
이처럼 피아노 건반 위에서는 크고 작은 부상이 계속된다. 피아니스트 김주영 씨는 “종이에도 베어 피가 날 수 있듯이 건반 위를 훑어내리는 ‘글리산도’ 주법을 하는 도중 건반에 부딪혀 손톱이 깨지고 피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복잡하고 빠른 패시지를 연주하다가 튀어나와 있는 검은 건반과 흰 건반 사이에 손톱이 끼여 갑자기 비명을 지르거나, 깨어진 손톱에 찔려 피가 날 때도 많다.
피아니스트인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손톱 밑이 갈라져도 반창고를 붙이고 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연주를 할 때마다 응급처치를 위해 손톱 밑에 매니큐어처럼 바르는 액체 반창고인 ‘뉴 스킨’을 꼭 챙긴다”고 말했다. 그는 “이 약은 한국에서는 살 수가 없어 미국에 다녀올 때 꼭 사와 학생들에게도 나눠 준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피아니스트들에게 손톱은 전쟁에 나가는 병사가 총기를 손질하는 것처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손가락을 세워서 치는 유형의 피아니스트들은 부상 방지를 위해 손톱을 짧게 깎아야 한다. 피아니스트 신수정 씨는 “평소에도 2, 3일에 한 번은 조금씩 깎고, 연주회를 앞두고는 하루 전에 꼭 깎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상하게 피아노 연습을 많이 안 하면 손톱이 더 빨리 자라고, 연습을 많이 하면 굳은살이 없어진다”며 “무대 위의 연주자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흥 때문에 어떤 아픔도 견뎌내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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