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판승’의 사나이
이젠 가슴속 恨과 한판…
패장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모습도 감췄다.
7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유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
남자 73kg급 김원중(용인대)과의 패자 결승에서 지도 2개를 받고 패한 이원희(27·KRA)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도복 상의를 젖히며 “아∼”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대기실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KRA 최용신 코치는 “할 말 없다. 죄송하다”는 그의 말을 전했다.
이원희는 그날 밤 늦게 귀가했다. 어머니 이상옥 씨는 이날 판정에 대한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왕기춘과의 대결에서 기술을 걸고도 점수를 받지 못한 것이 속상했고, 예선에서 한판으로 이겼던 김원중과의 재대결에서 잇달아 지도를 받은 것도 가슴 아팠다고 밝혔다.
아버지 이상태 씨는 그날 밤을 떠올렸다. “원희가 제 엄마 어깨를 주무르며 되레 위로하더라. 하느님이 더 큰 것을 주시려고 그런 것 같다고 하면서….”
용인대를 나온 이원희는 대회를 앞두고 ‘추성훈 관련 발언’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용인대 파벌’에 관한 질문을 받고 “큰 선수가 되려면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한판으로 이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 게 거센 비난 여론에 휘말렸던 것. 아버지 이 씨는 이렇게 말했다. “원희가 친한 추성훈을 비하할 이유가 없다. 평소 생각을 얘기한 것이 잘못 전달됐다. 이번에도 한판으로 이기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다음 날 이원희는 KRA 금호연 감독에게 18일까지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태릉선수촌에 들러 짐을 뺀 이원희는 휴대전화를 끄고 사라졌다. 가족, 소속 팀과도 연락을 끊었다.
2003년 초 헝가리 오픈을 앞두고 선배 최용신이 배탈로 빠진 자리를 메우며 우승했던 이원희는 그해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아시아선수권, 오사카세계선수권, 이듬해 아테네 올림픽에서 정상에 오르며 한국 유도의 상징이 됐다. 금 감독은 “유도 강국 일본과 러시아에는 서른 살 넘은 대표 선수가 꽤 있다. 원희가 지금처럼만 체력을 관리한다면 2012년 런던 올림픽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두문불출했던 이원희는 15일 서울로 돌아왔다. 어렵사리 통화가 된 그는 “평소 다니던 기도원에 가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쉬움을 다 털어버리지는 못했지만 나는 유도 선수다. 가을에 있을 전국체육대회 등을 대비해 최선을 다해 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날은 이원희와 골프 스타 김미현(31·KTF)의 결혼설이 나왔다. 양가에서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원희는 지난해 재활 치료를 하며 김미현과 가까워졌다. 연말에는 인천에 있는 한 식당 벽에 둘의 사인을 남겨 놓기도 했다.
사상 첫 올림픽 2연패의 꿈을 놓친 ‘한판승의 사나이’. 그가 사랑의 결실과 함께 화려한 부활에 성공할지 궁금하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