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경제계에선 의미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폴리이미드(PI) 필름이라는 전자소재 분야에서 경쟁해 온 코오롱과 SKC 두 대기업이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하고 이날 계약서에 서명했지요.
▶본보 4월 18일자 B2면 참조
‘대기업간 자발적 통합’ 젊은총수들 의기투합
해외 글로벌 기업 간 전략적 제휴나 국내 대기업과 외국 기업 간 합작 소식은 많이 들었지만 국내 대기업 간 ‘자발적 합치기’는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굳이 전례를 찾는다면 과거 군사정권 때나 외환위기 이후의 사실상 강제적인 합병 정도가 있겠지요.
PI필름은 내열성과 내구성이 좋아 휴대전화, 평판디스플레이 등의 핵심 부품으로 사용되고,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유망 사업입니다. 하지만 몇몇 일본 업체가 이미 세계 시장을 과점(寡占)한 상황에서 코오롱과 SKC가 2005∼2006년 뒤늦게 뛰어들어 이들을 독자적으로 상대하긴 애초에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배영호 코오롱 사장과 박장석 SKC 사장은 지난해 말 회사를 합치기로 하고 두 기업 총수들의 흔쾌한 동의를 얻어 지난해 세부 논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멀쩡한 대기업들이 50%씩 똑같은 지분을 갖고 각자의 기존 사업체를 합친다는 게 말은 쉽지만 간단한 일은 아니지요.
가장 큰 문제는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표이사 사장을 어느 쪽이 맡느냐였다고 합니다.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두 회사는 어떻게 결정했을까요. 답은 의외로 단순하고 웃음이 나기까지 했습니다.
배 사장과 박 사장이 만나 학창시절에나 했을 법한 ‘사다리타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 단순한 ‘절차’를 통해 코오롱 측이 초대 대표이사 사장을 맡게 됐고, SKC 측에선 아무 이의제기도 없었다고 합니다. 상황이 복잡하고 결론내기 어려울 때는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네요.
두 회사 관계자들은 지금 “역사에 남을 만한 대기업 협업 모델을 한번 만들어보자”며 의욕에 차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제살 깎아먹기 식 출혈 경쟁을 해 온 우리 기업들에 ‘사다리 타기’로 탄생한 두 회사의 합작법인이 새로운 협력 모델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산업부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