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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엔 藥, 물가엔 毒…高환율정책 이대로 좋나

입력 | 2008-05-17 02:58:00

한은 총재-은행장들 금융협의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왼쪽)가 16일 오전 한국은행에서 열린 월례 금융협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총재는 8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최근 물가 급등은 원자재 가격 상승보다 환율의 영향이 더 크다”고 발언하며 환율 상승을 용인해온 기획재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연합뉴스


구매력 약화 → 내수 위축 → 고용 불안 악순환 우려

“한국 수출은 가격경쟁력 아닌 품질이 결정” 지적도

물가보다 성장우선 주장 ‘강만수 환율’ 논란 커질듯

4월 수입물가 31.3% 급등 10년 만에 최대폭

《4월 수입물가(원화 기준)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3% 급등했다. 외환위기로 원화 가치가 급락했던 1998년 5월 31.9% 이후 10년 남짓 만에 최고치다. 수입물가가 급등한 데에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른 탓도 있지만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이를 증폭시킨 영향이 크다. 수입물가 상승률 가운데 3분의 2 정도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영향을 미쳤지만 나머지 3분의 1은 원화가치가 떨어진 때문이다.

수입물가는 한두 달 뒤면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높아진 소비자물가는 특히 서민층에 악영향을 줘 정부에 정치적으로도 큰 부담이 된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원화가치를 낮게 유도해 수출을 늘리고 성장을 자극하려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환율정책에 대한 의구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강만수 환율’이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 물가에 미친 환율 영향 커졌다

1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수입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 15.6%에서 올해 1월 21.2%, 2월 22.2% 3월 28.0%, 4월 31.3%로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물가도 지난해 12월부터 매월 한은의 물가관리 상한선인 연 3.5%를 지속적으로 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환율변동 효과를 제거한 외화표시 4월 수입물가 상승률은 작년 동월 대비 21.9%에 머물렀다. 같은 달 원화로 표시한 상승률은 31.3%였다. 높아진 환율 때문에 수입물가 상승률이 9.4%포인트 더 높아졌다는 뜻이다.

월평균 원-달러 환율이 930.24원 수준이던 지난해 12월엔 원화표시 수입물가와 외화표시 수입물가의 차이가 1.5%포인트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이성태 한은 총재는 최근 “우리 경제에서 원자재 가격과 환율 중 물가에 미치는 것은 환율의 영향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또 원-달러 환율이 1%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1년간 약 0.08% 올라 대표적인 원자재인 원유 가격보다 약 4배의 영향을 물가에 미친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 “고환율 성장 촉진 효과 줄어”

재정부가 원하던 대로 높은 환율은 수출을 촉진하고 있다.

16일 관세청은 4월 무역수지 적자폭이 1억9500만 달러로 3월의 8억2000만 달러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 발표했다. 관세청 측은 “높은 원-달러 환율의 영향으로 4월 수출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26.4%에 이른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낮은 원화가치는 최근 수출 증가를 통해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는 긍정적 효과보다 물가 상승에 따른 임금 근로자들의 실질구매력 약화, 이에 따른 내수 위축 등의 부정적 효과가 커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원화가치가 낮으면 국제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며 “다만, 낮은 원화가치가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뿐 아니라 물가 불안과 내수 위축을 가져오는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수 위축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소비재판매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 5.7%에서 올해 같은 기간 3.8%로 떨어졌다. 일부에서는 최근의 수출 증가를 낮아진 원화가치의 영향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주장을 펴는 전문가들은 원화 가치가 높았던 2003∼2006년에도 한국은 두 자릿수의 수출 증가율을 보였던 점을 그 근거로 든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최근 분석에 따르면 원화가치가 약세를 보여도 석유제품 등 원자재 도입가격이 높아져 국내 기업이 국제 시장에서 상품 가격을 낮출 여력이 크지 않다”며 “한국 기업의 수출은 가격경쟁력보다 수입국의 수요, 제품의 품질이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관건

재정부는 “수출이 늘면 경상수지 적자가 줄고 성장률을 높여 결과적으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서비스를 포함한 내수의 기여도가 수출보다 낮으면 같은 수준의 성장을 하더라도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나빠지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내수가 위축되면 고용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 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화가치를 낮게 유지함으로써 목표한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더라도 내수가 심하게 위축되면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의 궁극적 목표가 오히려 훼손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수출 대기업의 매출 증가가 고용확대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분석들도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4월에 수출이 호조를 보였지만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4월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2.0%로 전년 동월에 비해 0.3%포인트 떨어졌다.

재정부 관계자는 “2, 3년 전까지 성장률이 1% 높아지면 6만 개 정도의 일자리가 늘었는데 최근에는 4만 개 정도로 줄었다”며 “다만, 성장에 따른 일자리 증가세 둔화가 단기적인 현상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물가 상승과 내수 위축을 감내하고 선택한 수출 부양의 성패는 성장률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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