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연쇄 회동을 했다. 처칠과 루스벨트는 골초였지만 사우디 국왕은 담배 냄새를 싫어했다. 루스벨트는 상대방을 고려해 회담 내내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나 처칠은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회담장에서 시가에 불을 붙였다. 결국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사우디의 석유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자원 확보를 위한 정상외교의 중요성을 언급할 때 인용되는 사례다.
▷중앙아시아 3국과 아제르바이잔을 방문 중인 한승수 총리도 상대국 정상과의 관계를 자원외교의 카드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총리는 우즈베키스탄 방문 때는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측의 요청대로 그의 출신지인 사마르칸트를 먼저 방문해 우호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에게 “내가 머무는 동안 해결해 달라”고 부탁해 잠빌 유전 탐사 본계약을 이끌어냈다. 한 총리가 순방 도중 조급하게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한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해도 결과가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석유의 경우 양자(兩者) 외교를 통한 확보 전략이 점점 중시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내 산유국 국영석유회사의 생산량이 다국적 석유회사 생산량의 2배로 늘어난다. 국제 에너지시장에서 주요 산유국의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커질 것이라는 예고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산유국을 찾아다니며 돈 보따리를 푸는 것은 이 같은 판도 변화를 일찍이 간파했기 때문이다. 자원외교의 성패는 결국 자원부국의 지도자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 정부는 자원외교에 나서면서 패키지 방식을 들고 나왔다. 에너지 수입과 사회간접자본(SOC)이 열악한 자원부국에 발전소 도로 공장 등을 건설해주는 프로젝트를 연계해 추진한다는 것이다. 한 총리가 찾은 나라들도 건설 정보기술(IT) 섬유 등 우리가 경쟁력이 있는 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니 다행이다. 뒤늦게 자원 경쟁에 뛰어든 우리가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이번 순방이 주요 자원의 안정적 공급원을 확보하는 첫걸음이 됐으면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