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005년 중단했던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식량 지원 재개를 선언했다. 3년 전 식량지원 중단의 논리가 분배 투명성과 불완전한 모니터링이었던 만큼 분배에 대한 검증장치도 강화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식량분배 감시요원 중에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의 실무협상에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받아들이겠다면서도 ‘한국계(ethnic Korean)’는 국적과 관계없이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미국이 이를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북한은 1995년 11월 문을 연 세계식량계획(WFP) 평양사무소에도 한국계 직원의 근무를 단 한 번도 허용한 적이 없다. 시그프리드 헤커 전 로스앨러모스연구소장 등이 북한의 초청으로 빈번하게 영변 핵시설을 드나들 때도 한국계 인사는 지난해 말 딱 한 차례 그것도 ‘참관인’ 자격으로 영변 원자로를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북한은 북핵 신고 과정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는 미국 국무부 성 김 한국과장이나 국무부 한국과 북한팀장을 맡고 있는 유리 김 씨 등의 방북엔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식량분배요원에 한국계를 배제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북한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민족끼리’의 원칙을 입만 열면 강조해 왔다. 모든 문제에서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당면 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 가자던 북한이 오히려 동족을 ‘차별’하고 있으니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식량분배 감시요원에 한국계가 포함되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다. 한국계 요원들이 식량분배 모니터링 외에 북한 내부 사정까지 파악하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었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정부가 식량 지원을 중단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러나 인도주의적 지원은 주는 쪽이든 받는 쪽이든 정치적 목적이나 고려가 없어야 그 순수성을 존중받는 법이다. 북한이 한국말을 하는 진짜 미국 사람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한국계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북한이 인도주의적 분야에까지 ‘우리 민족 배제’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