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소장 ‘건상열차분야지도’ 등 2점
“현존 최고 국보 228호보다 시기 앞선 듯”
핼리혜성 관측 일지 ‘성변등록’도 공개
15일 오후 연세대 학술정보원(옛 중앙도서관) 내 전시실. 옛 천문도와 천문학, 수학 관련 고문서 40여 점이 13일부터 전시 중이다. 다음 달 28일까지 계속되는 ‘한국 과학의 전통과 연세’를 주제로 한 전시회다.
전시작 중 조선시대의 필사본 천문도 한 점이 눈길을 끈다. ‘건상열차분야지도(乾象列次分野之圖·가로 74cm, 세로 140cm)’. 이 천문도의 별자리 그림은 국내 최고(最古) 천문도인 국보 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각석’은 돌에 새겼다는 뜻)을 닮았다. 이름도 맨 앞 글자만 다를 뿐이다. ‘乾’도 하늘이란 뜻이니 의미는 같다.
‘국보 228호의 필사본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유물을 소개한 글이 눈에 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을 위해 시작(試作)한 것으로 추측되는 자료다.” 이 추정이 맞다면 국보 228호보다 제작 시기가 앞서는 국보급 천문도인 셈이다.
그 근거는 뭘까. 발문에 적힌 이 유물의 제작 시기는 ‘홍무(洪武) 28년’으로 1395년(태조 4년)이다. 국보 228호의 제작 시기는 1395년 음력 12월로 제작 연도가 같다.
‘한국천문학사’를 펴낸 나일성 연세대 명예교수는 국보와 같은 계통의 천문도이면서 구성이 다르고 국보 제작을 주도한 권근(1352∼1409)의 이름만 발문에 적혀 있는 점에 주목했다. 국보에는 권근 등 제작에 참여한 학자 12명의 이름과 관직이 적혀 있다.
이 유물은 또 국보와 달리 별자리 그림 바깥 둘레에 주천도수(周天度數·하늘의 둘레를 나타낸 눈금)가 없다. 국보 천문도는 18세기까지 절대적 권위를 누렸기 때문에 국보 이후 제작된 같은 계통의 목판본, 필사본 천문도는 구성과 별자리 그림이 국보와 똑같은 데 비해 이 천문도는 국보와 달라 후대 유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나 교수의 설명. 나 교수는 “권근의 이름만 적혀 있는 것으로 볼 때 천문도를 돌에 새기기 전 실수를 줄이기 위해 만든 여러 시안 가운데 한 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필사본 천문도(가로 83.5cm, 세로 139cm) 한 점도 주목된다. 이 천문도는 국보 228호 계통의 천문도지만 별자리 그림의 방위가 국보에 비해 시계 방향으로 90도 틀어져 있고 별자리 그림을 28구역으로 나눈 ‘28수(宿)’의 구획을 나타내는 방사선, 적도와 황도, 주천도수가 없다.
나 교수는 이 천문도가 고려 13세기 말∼14세기 초에 제작된, 국보의 모본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후대의 필사본이라면 국보와 천문도의 구성이 다를 리 없고 별자리 그림 이외의 구성 요소가 이처럼 간략할 수 없다는 것.
국보 228호는 고구려의 천문지식을 기초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 교수는 “‘고려사’에, 탁월한 천문학자 오윤부(?∼1305)가 ‘일찍이 스스로 천문을 그려 바쳤더니 일자(日者·날의 길흉을 점치는 사람)가 다 취하여 이를 본받았다’고 적혀 있다”며 “천문도의 아이디어가 조선시대에 갑자기 나타났을 리 없는 만큼 고려시대에 제작된 다양한 종류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작 중 조선시대에 천문, 지리학 등의 사무를 맡았던 관청인 관상감의 핼리혜성 관측 기록이 적힌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22호 성변등록(星變騰錄)도 흥미롭다.
이 유물은 1759년 3월 5일 출현한 핼리혜성이 3월 29일 소멸할 때까지의 변화상을 빠짐없이 관측 기록한 것이다. 날짜별로 혜성의 이동 경로, 혜성의 꼬리 길이, 모양, 색깔까지 자세히 기록했고 3월 27일 혜성이 보이지 않는데도 혜성이 소멸한 것으로 추측할 뿐 관측을 계속해 29일 소멸을 확정했다.
김영원 연세대 학술정보원 국학연구실장은 “당시 핼리혜성은 전 세계에서 관측돼 기록으로 남았지만 ‘성변등록’처럼 상세한 기록은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